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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K-1 WGP

최홍만이 승리하던 날... 이면주가 생각나다!

지난 23일 최홍만이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에서 '야수' 밥 샵을 물리치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 시간 서울 거리를 걷고 있었던 반또라이 실바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거리의 쇼윈도에 설치된 TV화면에 하나 둘 K-1 중계 장면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 저녁식사를 위해 들어갔던 식당에서도 여지없이 K-1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과거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때나 있을 법 했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 거리와 식당의 TV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40대 중반의 신사분도 끼어있었고 20대 초반의 여대생도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는 마니아 수준을 훨씬 넘어선 기사아저씨의 격투기 지식에 또 한번 놀랐다. 기사분들끼리 통신을 하기위한 무전기로 최홍만 경기 결과를 다른 기사분들에게 해설해주고 있었다.

불과 2년전에 선배 기자에게 K-1과 프라이드 FC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던 반또라이 실바에게는 왠지 모를 격세지감에 빠지게 하는 장면이었다. 최홍만과 밥샙 경기가 펼쳐지던 시점의 시청률이 15%를 상회해 역대 케이블 위성 채널 역사상 최고수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2년전쯤 당시 스포츠 담당 기자였던 선배에게 격투 스포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소한 룰 부터 일본이나 미국에서의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설명하기 위해 몇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설득 했었었다. 그때 당시 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던 선배를 설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이밀었던 것이 바로 최홍만과 이번에 맞붙은 밥 샵의 사진이었다. 밥샵의 엄청난 근육과 무시무시한 표정이 제대로 잡힌 사진을 구해 선배에게 들이밀고 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NFL 출신이라는 것과 2m 3cm에 160kg의 K-1 선수라고만 덧붙였다.

그때까지 K-1과 프라이드를 일본의 프로레슬링 정도로 생각했던 그 선배는 밥 샙의 사진을 보고나서야 관심을 조금 보이기 시작했었다.

격투 팬 200만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시청률 수치가 공개되자 조금은 이를 실감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사실 이런 엄청난 발전에는 최홍만의 K-1진출과 잇다른 선전이 큰 역할을 담당한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최홍만이 실질적인 K-1 월드 그랑프리 본선무대에서 수준급 파이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서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격투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 했다고 보여진다. 최홍만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편으로는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최홍만이 서울대회에 첫 출전할때까지만 해도 사실 '한국 입식타격의 에이스'는 이면주 였다. 최홍만이 첫출전에 깜짝 우승을 거머쥐던 날 이면주도 서울대회 토너먼트에 참가했었던 사실은 이제는 잊혀진 사실이 되었지만, 이면주는 당시까지 스피릿 MC 초대 챔피언, 격투사 협회 무제한급 우승 등 국내 헤비급 입식타격계의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국내 전적은 29전 26승. 적수가 없다는 말이 헛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혹자들은 이면주가 2년 연속 K-1 서울대회에서 일본 파이터에게 패배한 것을 두고 그의 실력을 폄하하기도 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최홍만이 비교적 '간단하게' 우승해 버리자 상대적으로 더욱 이면주와 비교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홍만의 경우는 아마도 K-1 역사를 통틀어서도 유례없는 특별한 케이스고 그외의 거의 모든 케이스는 이면주 쪽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면주와 맞붙었던 나카사코 츠요시와 호리 히라쿠도 우리가 잘 모르는 선수였기에 가늠할 수 없었지만 엄청난 역량을 지닌 좋은 파이터 들이다. 일본 입식타격계의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계층구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나카사코나 호리 같은 파이터들이 얼마나 엄청난 선수인지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운동환경과 트레이닝 시스템의 실체를 볼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이면주를 다시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습할 때의 이면주를 보면 과연 저 선수를 누가 이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K-1 관계자들도 동감한 부분이었다. 당시 서울대회를 개최하고 한국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왔던 K-1 스카우터들은 이면주와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두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첫째는 열악한 환경. 당시만 해도 프로 격투라는 말 자체가  없었을 때고 그것은 지금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두번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잠재력 이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잠재력은 개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 겠지만 격투 스포츠에서의 잠재력은 혼자서 개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독 천재형 선수가 나오기 힘든 종목이 바로 격투 스포츠다.

직접 만나 본 이면주는 차분하면서도 조리있게 참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소 링위에서의 험학한 인상과 달리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젠틀하기 까지 해서 인터뷰 내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튿날 K-1 링위에 오른 이면주는 경기 초반 지나치게 긴장해 스스로 경기를 어렵게 만들며 끝내 안타깝게 패배한 것으로 직접 본 나는 무지하게도 그런 비전투적인 친절함이 패인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당시의 분위기는 이면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소위 '간이 작아서' 큰 경기에서 약하다는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반인들의 시각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얼마전 필자도 임치빈의 K-1 MAX 데뷔전을 소개하면서 '임치빈이 K-1의 규모와 위압감에 제 실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네티즌들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운동선수가 그런 따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느냐'는게 말이 안된다는 게 비난의 요지 였는데, 그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일본과 미국 파이터들이 우리에게는 단어 자체도 생소한 '심리훈련'을 경기를 앞두고 정규 훈련으로 빠지지 않는 훈련과정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심리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상담이나 이미지 트레이닝 등 이미 검증된 과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이를 중요하게 다룬다고 한다. 골프 같은 고급 스포츠에서나 하는 줄 알았던 심리 훈련이 스포츠 선진국 들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종목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 각 종목의 특성에 접합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다니 부럽기만 한 부분이다. 격투 스포츠도 가장 정신적인 영향력이 큰 멘탈 스포츠의 하나라고 하니 심리훈련의 역할의 비중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면주 선수가 심리훈련만 받으면 당장이라도 K-1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는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난 재원이라 하더라도 절대 세계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이야기를 꼭 한번 하고 싶었다. 최홍만의 경기는 1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대다수의 우리나라 선수들과 격투 스포츠 종사자들에게는 말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싼 중계권료를 꼬박꼬박 일본에 송금하며 광고 수지타산 맞추기에 급급한 방송사들과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열정만으로 격투 스포츠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고군분투 하며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격투 스포츠 종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아울러 격투 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 이글을 읽어준 고마운 네티즌 여러분들의 고견도 청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격투 스포츠는 정말 잠재력이 있는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