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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프라이드FC 'Forever'

남제 2006 '60억분의 2?'

남제 2006 FUMETSU 대회 포스터 

원매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운다.
그랑프리는 챔피언 벨트를 얻기 위해, 타이틀 매치는 도전과 수성을 위해 링에 오른다.
'남제'는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팬들을 위해 링 위에 오른다.

'극기(克己)'...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축제'이다

 올해의 남제의 타이틀은 '불멸(不滅; FUMETSU)', 공중파 중단 사태로부터 촉발된 '프라이드 포에버(PRIDE Forever)' 캠페인의 종착점으로 보인다. 크로캅을 위시로 한 주요 선수들의 이탈 움직임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속에 치뤄졌다. 프라이드의 한 해를 정리하는 축제라는 대회 취지에 무색하게 웰터급과 미들급 챔피언들의 경기가 없었던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설'을 넘어 '불멸'의 챔피언으로 남을 수도 있는 이 사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60억분의 1'이라는 수식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강의 챔피언이며  인류 역사상 최강의 완전무결한 MMA 파이터인 효도르는 이번 대회에서 세번째 타이틀 방어전을 치뤘다. 상대는 '사모아의 괴인' 마크 헌트. '괴인'이라는 닉네임을 얻게만든 엄청난 위력의 하드 펀치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크 헌트는 효도르에게 매우 위협적인 상대였으며, 2001년 리저버 우승에 이어 또 한번 격투사에 길이남을 명장면을 연출 할 뻔 했다. 그를 왜 '괴인(怪人)'이라 칭하게 되었는지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매우 인상적인 경기였다. 가히 '60억분의 2'의 자리에 어울리는 호적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 전, 전문가들의 하나 같은 예상은 마크 헌트가 스탠딩으로 승부를 걸 것이라는 것이었다. 헌트를 '괴인'으로 불리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이 가공할 만한 위력의 펀치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맷집 이라는 것을 2001년 K-1 WGP 챔피언 자리에 오를 때 이미 전세계가 직접 목격했던 사실이었다. 확실히 헌트의 펀치만 떼어내서 본다면 효도르의 펀치보다도 훨씬더 우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도르 자신도 아마 첫번째 헌트의 스윙을 직접 목격한 순간에 알아 차렸을 것으로 보인다.

효도르가 세계 최고수준의 관절기 마스터라는 것도 헌트가 그라운드 승부를 피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한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역으로 효도르 자신 또한 그렇게 예측하고 그라운드 승부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헌트의 그라운드 플레이가 항상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프라이드에와서 이미 몇차례 뼈아픈 그라운드 패배를 당했었기 때문에 그라운드 플레이 보강에 초점을 맞추고 훈련해 왔다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브미션 기술 습득에는 시간이 걸릴 것 이며, 헌트가 그 '시간'을 채웠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된 후 우리들의 예상대로 진행 되는 듯 했다. 헌트가 효도르의 핸드 스피드를 압도하는 위력 넘치는 펀치 궤도를 선보이자마자, 천하의 효도르도 클린치 후 테이크 다운으로 그라운드로 승부처를 옮겼다. 테이크 다운이 성공함과 공시에 마운트 포지션을 따내고 효도르 특유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암바가 이어질 때 까지만 하더라도 예상 시나리오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효도르에게 팔을 내준 헌트가 각도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스윕을 성공시켰지만, 효도르가 이순간을 놓칠리 없었다. 상대의 위치가 바뀌는 것에 따라 리버스 암바를 성공시켰고 예상대로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순간 헌트는 자신이 '한계'를 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암바는 간단한 원리지만 역으로 팔 관절의 각도를 내주지 않으면 간단하게 풀어낼 수도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철저하게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며, 이 타이밍을 알아내느냐의 여부가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핵심 포인트이다. 설사 이 타이밍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 타이밍을 잡는 데 실패 했을 경우 그대로 경기가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대다수의 서브미션을 밥 먹듯 하는 파이터들도 오히려 실패했을 경우의 우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찰나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다.(그래서 암 바 시도는 빠를수록 좋다)

각도를 주지 않으며 암바를 탈출하는 마크 헌트헌트는 경이롭게도 이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타이밍에 팔의 각도를 내주지 않는 위치로 몸을 옮겨서 몸을 포갠 채 팔을 뽑아내었다. 관중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얼음주먹'이라는 효도르도 순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헌트의 타이밍 포착도 훌륭했지만 체중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팔을 뽑아낸 것 뿐만 아니라 체중압박이 유지되면서 천하의 효도를 상대로 사이드 마운트를 빼앗아 낸 것.

격투팬들의 기억 속에 효도르가 사이드를 내 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라고 질문드리고 싶다. 우리가 기억하는 효도르는 언제나 탑 포지션에서 파운딩을 날리던 모습이다.

헌트의 체중은 이날 훌륭한 '무기'였다. 효도르의 가장 큰 무기중 하나인 밸런스 유지 능력도 체중압박의 물리적인 차이를 뒤집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크헌트는 초보자 답지 않게 상대에 몸에 바짝 밀착해 있었으며, 효도르의 밸런스 회복 움직임에 따라 체중압박을 조절하면 파운딩을 섞어 주었다. 그래플링의 정석이 있었다면 2장 쯤에 나올법한 기본으로 충실했다는 이야기이다.

1라운드 5분 40여초 쯤 스탠딩 재계된 후에 같은 장면은 반복되었다. 헌트의 펀치에 효도르가 테이크 다운으로 맞섰지만, 체중 차를 이기지 못한 효도르가 되려 또 사이드 마운트를 내준 것. 내 눈을 의심했던 장면은 그때 연출되었다.

효도르에게 키락을 거는 마크 헌트헌트가 효도르를 상대로 키 락를 건 것. 그것도 두 차례나... 할말은 잃은 것은 물론, 처음으로 효도르의 패배를 예감하게 할 정도로 완벽하게 걸렸다. 순간, 마크 헌트의 달란트(Dalant)의 무궁함에 신이 어쩌면 불공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효도르에게만 어울리는 줄 알았던 그 큰 챔피언 벨트가 헌트의 두꺼운 허리에도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헌트의 키락도 무시무시했지만 효도르의 유연성과 인내력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 였다. 효도르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만, 완벽하게 제압된 상태에서 그대로 버터낸 것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언젠가, 서브미션에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 한 분이 관절기는 단 몇 mm 수준의 정확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헌트의 기술에 혹시 그 몇 mm의 오차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효도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말그대로 '버텨내며' 탈출했다.

효도르에게도 사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지타 가즈유키의 럭키 펀치 때도 그랬었고, 케빈 랜들맨의 말도 안되는 저먼 스플렉스 때도 위기 순간이었다. 마크 콜먼과의 1차전 때 백마운트를 내주고 안면에 펀치를 내주던 순간도 빼놓을 수 없는 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마다 효도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회복력과 유연함 그리고 침착함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경기를 뒤집었던 기억을 우리 모두 갖고 있다.

위기 뒤에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던가? 1라운드를 2분여 남기고 테이크 다운에 성공한 효도르는 하프 가드를 배앗아냈고, 깔끔하게 왼팔에 기무라를 성공시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황제의 응징이나 다름없었던 기무라를 헌트는 견뎌내지 못했고, 그대로 패배했다. 프라이드 8전만에 분에 넘치는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축제를 벌인 헌트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효도르를 위협한 파이터 랭킹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가공할만한 펀치력에 한계를 가늠키 힘든 맷집. 축복받은 육체... 여기다가 황제를 상대로 키 락을 성공시킨 서브미션 능력의 시간에 따른 상승곡선을 가늠해 본다면 아마도 내년 헤비급 판도는 마크 헌트에 따라 크게 영향을 주고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 헌트 시프트(shift)... 헌트가 바넷에게 패배한 바 있기 때문에, 바넷이 노게이라의 재대결에서 패배한 이상 한차례씩 자신을 더 증명해 보여야 하며, 노게이라도 지겹도록 기다려온 도전권 확보에 종지부를 찍기위해서는 마크 헌트와 만나야 한다. 크로캅이 있었다면 헌트가 한차례 판정승한 바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프라이드 헤비급 빅4 구도로 프라이드 포에버 캠페인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60억분의 2'의 헌트가 내년에도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을지, 이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프라이드 남제(男祭) 2006
-FUMETSU-(不滅;불멸)

일시
: 2006년 12월 31일

장소
: 일본 사이타마 수퍼아레나

경기
: 총 10 경기
(라이트급 원매치 3/ 웰터급 2/ 미들급 1/ 헤비급 3/ 헤비급 타이틀매치 1)


경기결과(종합):
[제 1 경기] 타무라 키요시(일본) <1R 1:18  KO-타격(니킥)> 미노와 이쿠히사(일본)
[제 2 경기] 아오키 신야(일본) <1R 2:24 탭아웃승-픗 쵸크> 요아킴 한센(노르웨이)
[제 3 경기] 고노 아키히로(일본) <3R 2:1 판정승> 곤도 유키(일본)
[제 4 경기] 마우리시우 쇼군(브라질) <3R 3:0 판정승> 나카무라 카즈히로(일본)
[제 5 경기] 길버트 멜렌데즈(미국) <3R 3:0 판정승> 가와지리 다츠야(일본)
[제 6 경기] 후지타 카즈유키(일본) <1R 2:09 TKO승-그라운드 타격> 엘다리 쿠르타니제(그루지아)
[제 7 경기] 고미 다카노리(일본) <1R 1:14 TKO승-그라운드 타격(파운딩)> 이시다 미츠히로(일본)
[제 8 경기] 제임스 톰슨(영국) <1R 7:50 TKO승-타격(파운딩)> 요시다 히데히코(일본)
[제 9 경기]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브라질) <3R 3:0 판정승> 조쉬 바넷(미국)
[제 10 경기: 헤비급 타이틀매치] 효도르 에밀리아넨코(러시아) <1R 8:16 탭아웃승-기무라> 마크 헌트(뉴질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