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르는 그에 비하면 '아이'나 다름 없다.
가라데와 유도의 일본,
킥복싱의 네덜란드,
쥬짓수의 브라질...
그리고,
삼보의 나라 러시아......
'세계 종합격투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파이터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러시아 파이터 하면 대부분 '러시아의 황제' 에밀리아넨토 효도르가 단연 첫 손에 꼽힐 것이고, '러시아군 최강'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와 '60억분의 1의 유전자'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가 이어질 것이다. 프라이드FC 올드팬들이라면 '러시안 훅'의 이고르 보브찬친을 빼놓을 수 없을 것. 실제로 이들 모두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급 격투가 들로 전혀 손색이 없다. K-1에서는 떠오르는 신성 루슬란 카라에프와 알렉산더 피츠쿠노프,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벨로루시)까지... UFC 헤비급 전 챔프 안드레이 '핏불' 알로프스키까지 거론 한다면 명실상부한 러시아 연방 격투군단을 총 망라한 게 된다.
현역 시절의 볼크 한과 현재
1961년 생, 190Cm,110Kg... 이해를 돕기위해 볼크 한의 캐리어에 대해 잠시 언급하면, 원래는 레슬링을 했었다. 세계선수권을 5차례나 재패한 알리 알리예프가 그의 스승. 대부분의 러시안 '삼보' 파이터의 출신이 그러하듯이 볼크 한도 러시아 군 공수부대에서 '커맨드 삼보'를 접하면서, 격투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볼크 한의 경우에는 위험하기로 악명높은 체첸 근방의 다게스탄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고, 더군다나 공수부대의 치안부대에 근무하며 후에는 삼보 교관까지 역임했다니, 러시안 커맨드 삼보에 있어서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삼비스트 시절의 화려한 입상 경력이 이를 바로 증명한다. 삼보를 익힌지 2~3년 여만인 1985년, 88년 전 소련 삼보 선수권 두 차례 우승(무제한급), 87년~88년 삼보 러시아 대회 3연승 등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까지 러시아 삼보계를 실로 '석권'했다.
1991년 마에다 아키라의 '링스'를 통해 일본 격투무대에 데뷔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포지션에서도 관절기를 성공시키는 실전용 '커맨드 삼보'로 단번에 주목을 끌었다.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는 차분한 경기 운영, 상대를 꿰둟는 듯 한 상황 판단과 대응 능력, 그리고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빠르고,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며, 과감하고 화려한 관절기로 링스 무대에 한 축을 담당했다.
현역 시절의 잡지에 실린 볼크 한. '환혹' 이라는 표현을 썼다.
특히, 펀치로 수세에 몰릴 때 가끔은 스탠딩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말도 안되는' 희귀 관절기와 백병전에서나 나올 법한 실전최적화형 기술들은 볼크 한 이전은 물론이고 그의 이후에도 쉽게 보기 어려운 명품 관절기들이었다. 일본의 서브미션의 대부격인 코사카 츠요시를 상대로 암바로 제압한 것만 봐도 그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선수시절의 볼크 한(하이라이트)
선수발굴에 천부적인 마에다를 단번에 사로잡았던 신기수준의 서브미션과 도무지 풀어서 설명해 낼 수 없는 복잡다단한 기술체계에 상황에 변화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능력, 예측이 불가능한 타이밍 포착 능력은 초기 링스 시절 유술가과 쥬짓떼로 이전에 이미 서브미션으로 링스를 뒤 흔들었던 것이다. 본격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관절기만으로 90%에 다다르는 승률을 기록할 만큼 '마스터'였지만, 복싱과 레슬링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종합격투기의 전설로 분류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통산 74전 53승 21패. 프로레슬링 요소가 상당부분 제거된 2000년 룰 개정 이후에도 노게이라에게 판정패한 것을 제외하고 9승을 기록했다.
Rings - King of Kings 2000 Final 노게이라 전 동영상
링스 이후의 볼크 한은 후진 양성에도 역시 역량을 보인다. 러시안 탑 팀을 이끌며 만들어낸 '60억분의 1' 효도르가 지도자로서의 볼크 한의 최대 업적이고, 현재 자신의 팀인 클럽 볼크 한의 대표선수인 하리토노프가 현재 진행 중인 다음 작품이다.
볼크 한의 러시안 탑 팀 시절. 효도르의 뽀송뽀송한 모습이 보인다.
9월 히어로즈를 찾은 볼크 한
이번 히어로즈 코리아 대회에도 볼크 한의 전설의 한 조각이지만 그대로 이어졌다. 두번째 오프닝 파이트에서 우리나라의 이은수를 로우킥으로 단번에 제압한 마고메드 설타나크메도프가 바로 그의 '학생'. 지난 9월에 하리토노프와 함께 일본에 방문했던 터라 우리나라에서 볼크 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산되었지만, 클럽 볼크 한의 수련생 수준인 마고메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를 접해볼수 있었다.
마고메드를 현장에서 직접 보았을 때, 사실 첫인상은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이유는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보는 '발목'이 너무 두꺼워서였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발목론'에 대해 다시 얘기하겠짐만, 마고메드에 대한 첫 인상은 볼크 한의 복사판을 기대했던 것인지... 다소 투박해 보이고, 잘 다듬어지지 않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1년 3개월여만에 완전히 육체개조를 통해 전혀 다른 체형으로 돌아온 이은수가 더 인상적이었지만, 결과는 완패. 마고메드의 첫번째 로우킥에서 나는 파열음만을 듣고(사실 격투로망은 딴 짓하고 있었다. 오프닝은 잘 안보는게 일종의 직업병이라...) 이은수의 패배를 직감했다. 직접 맞닥드린 이은수도 이를 간파 했을까? 시종일관 '야수'와 어울리지 않는 변칙 플레이로 반격하려 했으나,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전혀 요동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할 것만 한 마고메드는 K-1 '쇠몽둥이 로우킥' 슬로윈스키와 버금갈만한 강력한 로우킥 몇 개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어낸 파운딩으로 간단히 이은수를 제압해버렸다.
격투계의 우스개로 이야기 하는 속설 중에 '동유럽과 러시아연방 출신 중에 가슴에 털난 파이터는 무조건 조심해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마고메도도 여기에 해당되었다. 볼크 한의 전설의 한 조각이었지만 그 위용을 다시한번 경험한 경기였다. 마도메드 외에도 일류힌 미샤, 니콜라이 즈에프 등 미래의 효도르나 하리토노프가 '전설'의 이어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그와 그의 팀을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