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K-1 MAX

'MADE IN JAPAN' .... 마사토의 글러브에 센서가... ?

격투로망 2007. 10. 3. 23:02

쁘아까오가 마사토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일본이라는 강대국에서 벤츠를 타고 록본기를 누비는 수퍼스타 마사토와, 태국의 흙 바닥에서 포 푸라묵 네 '업둥이'로 크면서 시멘트 역기를 들면서 운동하는 쁘아까오의 양극화가 그 쾌감의 근원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쁘아까오의 전력은 그런 양극화를 훨씬 도드라져 보이기에 충분히 차고 넘치게 강했다. '절대강자'...... 링 위의 세계에서는 금기나 다름없는 수식어지만, 유독 쁘아까오에게만 서슴치 않고 허용되었다. 2004년 MAX 무대에 등장과 동시에 킥 만으로 제압하는 수준을 넘어서 초토화 시켰다. 마사토를 위해 차려진 무대를 쁘아까오가 그 무시무시한 로우킥으로 뒤엎은 것으로 모자라,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을 쌓고 차지한 형국이었다.

쁘아까오의 '녹 아웃' 로우 킥

K-1 월드 맥스 2007 '세계제일결정 토너먼트 결승전' 제 1경기에 '은빛늑대' 마사토와 '절대강자' 쁘아까오가 다시 만날때 까지만 해도, 킥 으로만으로도 MAX를 재패했던 쁘아까오가 펀치 콤비네이션까지 갖춘 상태라, 쁘아까오에 대한 공포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사토가 쁘아까오를 1회전 상대로 사실상 '지명' 했을 때까지만 해도 마사토가 그 공포를 극복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사토와 K-1측의 상호 호혜적인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보는 팬들이 더 많았다. 오히려, 마사토의 혹시 모를 또 한번의 패배에 대비한 얇팍한 꼼수 정도로 보거나, 몰락한 수퍼스타의 마지막 객기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K-1 월드맥스 2007 세계제일결정 토너먼트 결승전 제 1경기는 사실상 이날 대회의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마사토의 격투인생에 있어서 결승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사토가 자신을 위해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는 MAX를 통째로 빼앗긴 만큼 절박했겠지만, 이 정도 까지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쁘아까오는 여전히 강력했다. 쁘아까오의 로우킥은 여전히 거리유지와 견제, 기회 포착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마사토의 디딤발을 부러트릴 기세로 작렬했다. K-1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마사토의 풋워크를 로우킥 정타로 잡아 낸다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데, 쁘아까오의 로우킥은 쇠로 담근 채찍처럼 마사토의 하체를 분쇄시켰다. 한방 한방이 말 그대로 녹아웃 로우킥이었다.

지난 해 부터 눈에 띄게 좋아진 펀치 컴비네이션은 '가미'하는 수준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Champ to-be? Or not to be?(챔피언 이냐? 아니냐?)... 쁘아까오가 원하면 챔피언 MAX 최초의 V3와 2연패 쯤은 선택사양 처럼 보였다. 그러나 1라운드 중반 부터 마사토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감지 되었다.

마사토의 펀치가 전보다는 약간 거친 듯 했지만,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 원래 빠르고 다양한 몸놀림으로 깔끔한 펀치로 유명한 마사토였지만, 이날은 마치 글러브에 쁘아까오의 모든 움직임이 입력되어 있고 이를 감지해내는 초소형 센서가 달려 있는 듯 했다.

1R 마사토가 첫 다운을 빼앗았다.

쁘아까오의 습관적으로 뻗는 어정쩡한 왼손 잽 하나에 두 세개의 펀치로 즉각 반응했다. 원거리에서는 한층 가속이 붙은 왼손잽에 이어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이어졌다. 거리가 좁혀지면 여지없이 짧은 어퍼컷이 올라오던가 밖으로 휘감아 들어오는 훅이 파고들었다. 거친 듯 보였지만 분명 착착 달라붙어 유효타로 이어졌다. 1라운드 중반에 이미 완벽한 타이밍에 밀어 넣은 스트레이트가 그대로 안면에 적중하며 다운을 빼앗아 내기도 했다.

스텝은 물론이거니와 위빙과 더킹도 한층 빨라진 느낌이었다. 2만 5천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과 같았던 쁘아까오의 로우킥 사정거리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짧은 것 긴 것 할것 없이 끊임없이 펀치를 냈다. 바디 블로우에 이어 훅, 간간히 원투 느닷없이 단발 어퍼컷을 퍼 올렸고, 레프트 더블에 트리플 스트레이트 콤보까지...

마치 4체급 석권의 전설적인 테크니션 퍼넬 휘태커의 화려한 펀치 쇼를 다시 보는 듯 했다. 3라운드가 끝나갈 쯤에는 쁘아까오의 움직임이 굳은 듯 느껴질 정도였다. 단언컨데 K-1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것으로 따지면 세 손가락에 꼽을 만한 명경기 중에 명경기였다.

마사토의 완승이었다. 공이 울림과 동시에 쁘아까오가 가장 먼저 이를 깨달았고, 그 다음 뒤늦게 마사토가 이를 체감했다.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천천히 어안이 벙벙해졌을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3:0 전원일치 판정승. 마사토의 객기어린 꼼수가 극(極)한의 최선과 노력을 진(眞)실로 다한 승부로 바뀌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실, 쁘아까오가 펀치를 다능하게 사용한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킥 때문에 오히려 펀치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일까? K-1 진출 후에도 상당기간 킥만으로 경기를 해도 충분했으며, 그러다보니 세심한 빌딩(Building)이 안된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인 안 좋은 습관이 왼손을 불필요하게 뻗는 것이었는데, 마사토는 이것까지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했다. 펀치나 킥을 내기 직전의 예비동작도 파악하는 수준을 넘어 철저히 반응하도록 체득된 상태였으며, 공격 실패 후 움직임과 안면의 위치는 마치 좌표값을 글러브에 입력해 놓은 것 같았다.

마사토의 무서울 만큼 철저한 준비가 빛난 한 판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철저한 준비성... 슈퍼스타를 만들어낸 트레이닝 플랫폼과 마지막으로 '죽음보다 중하다는 수치스럽지 않으려는' 무사혼의 부활이 합작해 만들어낸 명 승부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글러브에 혹시 초소형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는지는 한 번 조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