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파이터

'억지대진-판정시비' 없는 격투야구팀!

격투로망 2006. 3. 20. 15:52

온 나라가 푸른 물결로 휘몰아치기를 한 달... 어제 WBC 준결승전에서 일본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면서 꿈만같던 연승행진을 마쳤다. 근 한달여를 '세계최강야구'라는 꿈을 꾸다 깨어난 듯한 느낌이다. 점차 현실로 돌아오면서 슬며시 떠오른 엉뚱한 상상하나... 만약에 파이터들도 야구팀을 꾸린다면 어떨까? 격투스포츠라는 경기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기이기 때문에 가장 단체 스포츠 성격이 강한 야구에 대입해보니 재미있는 상상이 이어졌다.

먼저 라인업부터 짜보자. 잘 알다시피 야구는 1회에 3 아웃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타석의 들어서는 순서가 매우 중요하며, 각 타순마다 요구되는 능력이 차이가 있다. 당연히 타순의 순서의 조합에 따라 그 전체의 힘은 각기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리드 오프(Lead-off)' 1번 타자는 무엇보다 높은 출루율과 적당한 도루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피드는 기본, 정교한 타격과 무엇보다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 중경량급 파이터들에게 눈길을 돌리면 역시 프라이드 라이트급 챔피언 고미 다카노리가 첫손에 꼽힌다. 좋은 눈은 물론 스피드에다가 날카로운 타격까지, 1번타자 감으로는 적격. 도루가 스피드 싸움이 아니라, 타이밍 싸움에 가까우며 기회 포착 능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고미도 꽤 잡잘하게 도루를 챙길 것이다.

1번타자와 함께 '테이블 세터(Table-setter; 밥상 차리는?)' 2번 타자도 수준급의 선구안과 타격능력에다가 경기 전체를 읽어낼 수 있는 작전수행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IQ 레슬러'라고 불리던 사쿠라바 카즈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최근 부쩍 부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슈트복스에 다녀온 뒤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타격에 붙은 스피드를 고려해 보면 카즈도 지터 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2번타자 감이다.

야구 공격의 핵인 클린업 트리오(Clean-up trio)의 시작인 3번 타자에게는 높은 타율이 필수다. 물론 발도 빠르면 좋지만 파워 쪽에 더 점수를 준다. 1, 2번으로 부터 시작된 찬스를 4, 5번 핵심타선에게 고스란히 연결해 주는 역할은 물론 때로는 찬스를 만들어 낼줄도 알아야 한다. 프라이드 미들급 챔프 반달레이 실바가 적격이 아닐까? 파워를 기반으로 하되 적당한 스피드도 갖춘... 거기다가 찬스를 포착하고 만들어 내는 능력은 실바를 따라올 파이터가 없다.

말그대로 팀타순의 중심인 4번타자는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꼭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프로야구에서 4번타자에게는 280이상의 타율에 매 시즌 30개 이상의 홈런, 그리고 100 타점 이상의 성적이 요구된다. 수준급의 타격능력과 함께 넘치는 파워, 앞선 주자를 언제라도 불러 들일 수 있는 득점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팀 공격의 핵심이니만큼 팀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현대 야구에서는 상대 투수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왼손 거포를 선호하는 추세. 프라이드의 대표적인 왼손 거포는 역시 크로캅이다. 적시에 '한 방'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크로캅이 제격이다. 잘 발달된 하체를 고려해 보면 꽤 장타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잘생긴 외모에 높은 인기까지 고려하면 영락없는 4번타자 감이다.

클린업 트리오의 마지막인 5번타자에 정말 알짜 선수를 배치해야 한다. 클린업 트리오에게 넘겨진 찬스를 마무리짓는 말 그대로 '해결사'형 선수가 제격이다. 무엇보다 파워가 중요하며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여야 한다. 5번타순에 한 방있는 파워 넘치는 선수가 있다면 상대편 투수는 4번타자와의 승부를 쉽게 거르지 못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누가 가장 잘 어울릴까? K-1의 제롬 르 밴너는 어떠실지? 마크 헌트도 고려해봄직했지만 최근에 준비가 덜 된 니시지마전을 제외하고는 화끈한 타격을 선 보인일이 가물가물하다. 원매치에서는 꾸준히 최강의 격투능력을 보여주는 밴너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거기다가 특유의 사우스-포 자세를 고려한다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파워를 겸비한 스위치 히터로, 상대 투수진 입장에서 매우 까다로운 카드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써놓고 보니까 이런 타자가 있다면 환상적이겠다. 파워 넘치는 스위치 히터라... 김인식 감독이 엄청 좋아하겠다.)

요즘은 6번타자도 클린업 트리오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추세다. 억지로 말하자면 클린업 쿼텟(Quartet) 쯤 될까? 타자들의 타격 능력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면서, 어느 팀이든 클린업 트리오는 막강타선이라치면 팀타격을 좌우하는 건 하위타선인 것. 하위타선이 시작인 6번타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덧붙이면 하위타선의 1번타자라고 할 수 있다. K-1의 '무에타이 미라클' 카오클라이 켄노라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쇠로깍은 회초리에 비교되는 날카로운 로우킥에 가끔씩 우리를 깜짝놀라게 하는 한 방까지... 타율은 낮지만 높은 정신력을 생각해 보면 무시못할 하위타선의 첨병 역할을 무난히 수행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8번 타순은 역시 공격력보다는 수비능력을 먼저 고려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수비도 야구 반쪽! 수비도 공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WBC에서 '날라다닌' 유격수 박진만과 외야수 이진영의 그림같은 플레이를 보며 다시한번 깨달았다. 특히, 하위타선의 중심타자인 7번타자는 경기 상황에서 주자를 앞두고 타석에 들어서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무리 수비중심의 선수라도 필요할 때 때려주는 타격을 갖췄다면 감독입장에서는 간판 타자만큼이나 이뻐보일 것이다.  수비하면 히카르도 아로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격투팬들 많을 것이다. 아부다비 챔프 출신의 특유의 '개비기(?)'와 끈쩍끈적한 수비, 그리고 90%에 가까운 판정승 비율을 고려해보면 수비는 합격점이다. 최근에는 실바의 무지막지한 양 훅을 니-가드로 막아내는 신기술을 선보여 대어를 낚기도 했었다. 가끔 터지는 단타능력도 수준급이다.

8번타순은 가장 타격능력이 떨어지는 타자를 배치하는게 보통이다. 보통은 수비는 빼어나지만 타격이 약한 유격수나 수비형 포수들이 자리잡는데, 격투가중에는 MAX의 코히루이마키나 K-1의 시릴 아비디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코히루이마키는 니킥 방어로 KO를 따낸 불멸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 9번 타순은 지명타자 제도가 없다면 투수가 서게 되는데... 이쯤되면 왜 효도르는 빠져있냐고 아우성 치는 격투팬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효도르는 타자보다는 수준급 선발 투수에 더욱 가깝다. 물론 세계 최고수준의 타격능력도 흠잡을 때 없지만, 그 타격의 원천인 핸드 스피드를 생각해보면 환상적인 투구를 기대할 수 있다. '국보급 투구' 선동열의 전성기때 투구폼을 보고 '상대를 때려죽일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있는데, 효도르의  펀치도 이에 못지않다. 물론 효도르의 다소 무리하는 듯한 오버로드 펀치는, 설사 적중되지 않더라도 이어지는 근접전이나 그래플링에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피드만 봐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수준이다.

올해 가장 기대되는 파이터인 효도르의 친동생 알렉산도도 핸드 스피드는 형을 꼭 빼닯았다. 오히려 큰 키에서 내려 꽂는 파워는 더 위협적인 공을 기대하게 한다. 형과 함께 원투 선발을 구축하면 최강의 선발진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선발진에 왼손 투수가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뚜렷하게 떠오르는 파이터가 없다. 크로캅이 왼발 하이킥에 가려서 그렇지 꽤 좋은 왼손을 갖고 있고, 거기다가 균형잡힌 하체를 감안해보면 꽤 좋은 투수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기는 하다. 왠지 박찬호 초창기 시절의 하이킥 투구폼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위의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서 경기에 나선나면, 제아무리 안하무인, 독불장군 미국이 주도하는 대회라도 언더베이스나 홈런-파울 판정 등 최소한 판정 시비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실력이 엇비슷한 나라에게 두번이나 이기고도 한번 졌다고 결승에서 떨어지는 듣도보도 못한 촌극이 연출되는 상황은 꿈도 못꾸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났는데, 3루 코치는 해머하우스의 마크 콜먼이 제격일 것 같다. 해머하우스 선수들의 경기 때 세컨으로 나온 마크 콜먼의 걸걸하며 쩌렁쩌렁한 응원을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격투팬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어떤 파이터들로 라인업을 채우실런지... 야구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억지글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