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파이터

효드르가 지목한 사나이... 룰론 가드너

격투로망 2005. 9. 4. 21:59

격투 스포츠 이벤트가 지금처럼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누구에게 '세계최강'의 칭호를 허락했을까? 역시 80년대 '라스베가스 키드'를 자처했던 필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마이크 타이슨이다. 최연소 WBC 헤비급 세계챔피언 타이슨은 많은 사람들 뇌리속에 아직까지도 링 위를 벗어나서도 세계최강으로 남아있다.

1980년 중반에 타이슨이 세계 3대 복싱 기구의 챔피언 벨트를 모두 따내며, 최초의 통합챔피언으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를 기억해보면 타이슨이 링위를 벗어나서도 실제로 '세계최강'에 가장 근접한 복서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당시 세계 프로복싱에는 이미 그의 적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던 것이 사실이었다. 만일 타이슨이 에반더 홀리필드 만큼 성실했다면 아마도 조 루이스(12년동안 25차 방어)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는 것에도 의심에 여지가 없었다.

타이슨이 의심의 여지없는 세계 최강의 복서라고 굳건히 믿고 있을 때, 들었던 생소한 이름이 있었다. 펠릭스 사본... 쿠바의 복서로 프로 스포츠가 없는 쿠바의 실정때문에 세계 프로 복싱에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타이슨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말그대로 아마추어 복서 였던 사본이 타이슨과 대적할 만한  최강의 복서로 거론된 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였지만, 그만큼 사본의 실력이 출중한 것의 반증이었다. 사실 92년 바르셀로나에서 그의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만일 쿠바의 정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프로복싱 무대로 옮겨 타이슨과 숙명의 대결을 펼쳤을 지 모르는 일이다.

펠릭스 사본은 아마추어 스포츠의 최고무대인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했다. 슈가레이 레너드에 버금가는  현란한 풋워크, 홀리필드를 연상케 하는 긴 리치, 거기다가 로이 존스 주니어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펀치 테크닉까지... 아마추어 경기 특성상 파워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것임을 감안하면 파워를 보강한다면 타이슨을 잡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사본은 올림픽에서 이를 증명했다.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아틀란타 그리고 2000년 시드니까지 올림픽 복싱 헤비급을 3연패하며 '살아있는 전설'로 이름을 알렸다. 쿠바에서는 '복싱영웅'으로 추앙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만일 쿠바가 88년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 하지 않았다면, 세계 복싱 역사에 전무후무한 올림픽 4연패의 대기록이 만들어 졌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헛으로 들리지 않았다.

사실 타이슨이 아니었다면 격투 스포츠 이전의 세계 최강의 칭호는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리스트가 가졌갔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올림픽에서 3연패의 업적을 이뤄낸 복서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만일 올림픽 투기종목 금메달리스트 중에 '세계최강'의 타이틀을 두고 일전을 벌였다면 펠릿스 사본의 상대로 매우 잘 어울리는 상대가 있다. 러시아의 '레슬링 대제(大帝)' 알렉산더 카렐린.

사본처럼 올림픽 레슬링 헤비급 3연패는 물론 세계선수권 10연패, 유럽선수권 12연패 등 13년 동안 단 한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는 '신화'적인 선수다. 단순히 패배하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93년 이후 부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까지 무려 7년동안 단 한점도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카렐린과 같은 시대에 활동해 선수 생애 내내 2인자에 머물렀던 미국의 매트 게퍼리라는 선수는 아틀란타 올림픽 결승에서 패배한 후 그를 '킹콩'에 비유하며 '그래도 카렐린을 상대로 8분이나 사운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위안을 삼았을 정도. 당시 카렐린은 갈비뼈가 부러진 채 경기를 가졌던 것이니 그 '강함'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대 격투 스포츠의 기류를 감안할 때 입식 타격에 강점이 있는 타이슨과 사본 보다 카렐린 쪽이 더 '세계최강'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미국의 파이터들을 중심으로 레슬링이 훌륭한 실전 격투기임을 증명해 보인 것은 물론 현재까지도 주짓수와 유도, 무에타이와 함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카렐린 쪽에 눈길이 더 쏠린다. 실제로 카렐린은 마에타 아키라가 이끌던 링스에 한차례 출전해 아키라와 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10여년을 넘게 세계 레슬링 계를 호령했던 카렐린에게 7년만에 단 한점을 따낸 선수가 바로 룰론 가드너이다.

작년 프라이드 '남제' 때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와 금메달리스트 간의 대결로 잘 알려진 룰론 가드너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에서 앞서 언급했던 게퍼리에 이어 대신 미국 대표로 출전해 당시 전대미문의 투기종목 올림픽 4연패를 바라보던 카렐린에게 파울로 얻어내기는 했지만 1점을 따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치기 출신의 레슬러가 카렐린을 꺽었을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카렐린의 노쇠 때문에 승리한 것이라며 폄하하기도 했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여정을 감안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60억분의 1'의 세계최강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29세, 레드 데빌)가 역대 최강의 도전자 미르코 크로캅(32세, 팀 크로캅)을 제압한 후 다음 상대로 이 룰론 가드너를 지목했다. 왜 하필 가드너 였을까? 그의 격투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2004년 남제 때, 그것도 미들급이던 요시다와의 단 한경기 뿐이었지만, 그 한 경기를 보고 룰론 가드너가 언젠가 효도르를 위협할 재목이라고 평가한 전문가들도 여럿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단 6개월간 팀 퀘스트의 댄 핸더슨과 랜디 커튜어에게 격투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드너는 예상외로 날카로운 펀치를 선보이며 요시다에게 판정승을 거두었다. 만일 가드너가 잽 외에 스트레이트나 훅 등 다른 펀치 테크닉을 하나만 더 습득 했더라면 요시다는 1라운드를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전평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2005년 프라이드 무대에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어쩐일인지 그 이후 프라이드 무대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자격으로 효도르가 직접 이름을 거론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지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지만, 룰론 가드너와 팀 퀘스트는 아직가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사실 크로캅 전이 끝나고 팀 퀘스트 쪽에 '효도르의 다음 상대는 룰론 가드너라고 생각하며, 현재 가드너의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효도르가 직접 가드너를 호명하기 전에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것은 효도르의 전 소속팀 러시안 탑 팀의 에이스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였다. 이미 러시안 탑 팀의 코치가 '배신자 처단' 운운 하며 효도르 타도를 공표해 놓은 터라 크로캅 다음은 하리토노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 이번에 효도르가 이례적으로 세르게이를 언급하며 자신의 동생 알렉산더가 더 재능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효도르가 예상외로 가드너를 지목한 배경은 무었일까? 격투 경력으로 치면 단 1전을 치룬 가드너에게 효도르가 격투가로서 매력을 느꼈을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역시 격투 외적인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러시아의 국민적인 영웅인 카렐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기며 은퇴하게 한 장본인인 가드너에게 '국민적인' 설욕을 위해 거론했다는 의견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시베리아 국경수비대의 현역 군인 신분이었던 카렐린에게 중사에서 준장으로 진급을 시켰을 만큼 카렐린이 국민적인 영웅이었으며 '위대한 러시아'의 표상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외에도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삼보와 유도를 병행해야 했던 효도르의 개인적인 바램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소 냉전시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세계에 사회주의 체재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구소련은 올림픽을 목표로한 엘리트 체육에 역량을 집중했었다.

어릴적부터 삼보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효도르는 엘리트 체육이 잘 발달되어 있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경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구 소련의 현실에서 유도선수로 올림픽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엘리트 스포츠 집중 육성정책의 거의 마지막 수혜자 중 하나가 효도르 였던 것이다.

자신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서 인류 역사상 최강의 레슬러에게 승리를 따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가드너를 시셈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기자회견이 있으면 특유의 '배바지 츄리닝' 패션으로 30분 먼저와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효도르를 생각해보면 시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구소련의 붕괴로 흐지부지 되었던 자신의 스포츠 인생에 나름대로 결말을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반미주의자'로 규정했던 효도르의 지난 언사와 함께 이번 가드너 지목이 여러모로 눈에 밟히는 대목이다.

 모두들 '영장류 최강' 카렐린이 이길 것이라는 일방적인 예상속에서 승리를 따냈던 가드너... 양치기 출신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가 또 한번 '60억분의 1의 사나이'를 상대로 의외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의 대전수락이 우선이지만 프라이드 무대에서 카렐린을 상대하듯이 했다가는 격투 스포츠에 있어서는 프라이드 FC가 올림픽보다도 벽이 높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