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K-1 WGP

최홍만이 프라이드로 갔다면?

격투로망 2005. 9. 11. 23:05

씨름천하 장사 출신 K-1  파이터 최홍만(25세, 2m18)이 오는 23일 2005 K-1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야수' 밥 샙(30세)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최홍만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상대와 WGP 경기 다운 경기를 갖게 되면서 자신의 무기가 사이즈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전세계에 증명하겠다는 심산이다. 벌써부터 일본 언론들은 골리얏 대 야수의 '괴수대격돌'이라며 좋아라 하고 있다.

그런 최홍만에게 예상치 못한데서 쓴소리가 들려왔다. 그 쓴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프라이드 FC의 사카키바라 대표. 지난 프라이드 미들급 GP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홍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독설에 가까울 정도의 격한 대답이 돌아왔다.

"최홍만에 대해 알고 있다"고 밝힌 사카키바라는 "안타깝게도 그가 만약 프라이드 무대에 나온다면 1분안에 KO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도적으로 최홍만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듣는 쪽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웃어 넘길정도의 수준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K-1의 불세출의 격투가 어네스트 호스트를 두번이나 잠재운 밥 샙을 '검은 콩' 운운하며 몰아세울 정도의 배짱이라면 한마디 코멘트라도 할 줄 알았는데, 어쩐일인지 최홍만 측에서는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것일까? 아니면 어느정도는 수긍한다는 의미였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디른 회사 사장이라도 사장은 사장이니까, 동방 예의지국의 청년으로서 반박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을까?

 개인적으로는 멋진 멘트를 겯들여 '기다려라!' 정도로 받아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홍만이 어쨌든 프로 파이터의 세계에 발을 디딘 이상 이제는 말 한마디도 자신의 '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일까? 만일 최홍만이 설사 종합 격투 무대에서 전혀 승산이 없다 하더라도 어차피 사카키바라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말'로 선공을 해왔다면 최소한 '말'로라도 되받아 칠수는 있었을 텐데...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격투 스포츠 이벤트의 수장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홍보 기회였을텐데 최홍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 최홍만과 대결하게 되는 밥 삽도 프로격투 무대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은 프라이드 링 위였다. 이제는 K-1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밥 삽이지만, 그의 체격조건과 격투 스타일을 감안할 때 '의지만 있다면' 종합 격투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파이터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도 있을 정도다.

미식축구로 다져진 태클은 곧바로 실전투입이 가능한 수준이고, 파워야 두말할 것도 없다. 무지막지해 보이기까지 하는 펀치공격에 자신의 체중을 활용한 압박만 배운다면 종합격투의 기본은 갖추는 셈이다. 거기다가 세기와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훌륭한 파이터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밥 삽은 노게이라에게 암 바로 패배한 후 더 이상 프라이드에 무대에 나오지 않았다.

 최홍만이 프로격투에 진출했을 때 '왜 프라이드가 아니고 K-1 인가'에 대해 설왕설래 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씨름이 접촉형 격투기인데다가 '테이크 다운 기술이나 발란스 등에 큰 이점이 있는데도 왜 그런 이점을 포기하느냐'는 것이 주된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혹자는 씨름에 대한 완벽한 배신이라고까지 이야기 할 정도 였다. 자신이 평생 몸담아왔고 오늘날의 최홍만을 만들어 준 씨름을 완벽하게 배제한 채 순수하게 자신의 큰 키와 체중 등 '사이즈' 만을 이용하여 격투를 하겠다고 나선 꼴이니 씨름을 사랑하고 천하장사를 명예롭게 생각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신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작 최홍만 자신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궁색하다. 씨름 기술을 가지고 프라이드에 도전한다고 가정해도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것은 아마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오히려 진정으로 새로운 신천지를 원했던 것이라면 오히려 프라이드 쪽이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에 최홍만이 프라이드 무대로 진로를 정하고, "오늘날의 최홍만을 있게 해준 씨름계에 보은 하는 심정으로 씨름으로 세계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프라이드 챔피언이 되어 우리의 반만년 역사와 함께해온 우리의 씨름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증명해 보이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면서 "어려운 씨름계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고 하고 프라이드 무대에 섰더라면 훨씬 멋있어 보이지 않았을까?

앗! 그러면 최홍만이 언젠가는 효도르와 맞서게 되었을까? 가정에서 시작한 상상 뿐이지만 생각만해도 찌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