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팅 파이팅(Quality Fighting) 없이는 격투 한류는 없다.
‘통계의 스포츠’ 야구
흔히 야구를 '통계의 스포츠' 즉, 가장 통계적인 스포츠로 꼽는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스포츠 통계도 소수점 세자리 까지 계량화 하는 야구에 비견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통계는 야구를 즐기는데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타율과 방어율을 비롯해, 출루율, 장타율, 승률에다가 득점권 타율, 도루성공율, 도루 저지율... 야구의 모든 행위가 통계로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야구의 나라 미국에서는 야구 통계로만 먹고 사는 회사가 있는 반면, 전미 야구 연구 협회의 연구(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SABR, 세이버)의 세이버 메트릭스는 가히 학문 수준의 심오한 수학적 분석체계를 자랑한다. "본즈와 루스 중 누가 더 위대한 타자인가?"에 대한 해답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리포트가 있을 정도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 이다.
야구가 가장 통계적인 스포츠라면 격투 스포츠는 그 반대편의 끝에 있다. 굳이 수식하자만 "가장 비과학적인 스포츠" 정도 되지 않을까? 실제로 격투 스포츠로 글을 쓰고 난 후 가장 많이 받고 답했던 질문과 답이 "누가 이기는가?"라는 우문이었다. 그때마다 답은 한결 같이 '링 위에서는 누구도 패배할 수 있다'는 더 어리석은 답변 밖에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격투 칼럼리스트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걸고도 한 승패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적도 많았다. 굳이 통계로 표기한다면 7할 정도 되려나? 셔독(Sherdog.com) 같은 유수의 격투 사이트에서 부지런히 승률과 KO율 등 지극히 미국적인 시각으로 계량화 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그 자료를 승패를 가늠하는 도구로 의미 있게 사용하지는 못했다.
격투가 들의 '기록'은 스포츠과학의 계량화된 분석 데이터 라기 보다는 그들이 걸어온 격투가로서의 삶의 기록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격투가 에게 승률이 의미가 있을까?
K-1 전적 12전 9승 3패의 기록이면 승률이 75%에 다다른다. 45전 30승 14패 1무면 승율 약 67%, 앞서 언급한 승률 75%의 파이터가 더 위대한 격투가라고 말하기는 선뜻 쉽지 않다. 앞선 기록은
퀄리티 스타트? 퀄리티 파이팅!
앞서 서두로 야구의 통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야구의 수많은 기록들 중에 격투 스포츠에도 적용될 만한 재미있는 기록이 있어서다. 퀄리티 스타트(Quality Start, QS)..... 선발 투수가 6이닝 이상 공을 던져 3자책점 이하로 막아 냈을 때를 의미하는 퀄리티 스타트는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그 어느 공식 기록보다도 큰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프로 스포츠의 최고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선발투수의 연봉 협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지표로 사용한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의
궁극적으로 승리와 패배라는 간결한 논리로 귀결되는 스포츠 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퀄리티 스타트는 승-패와는 관계없이 선수 개인의 독립적인 역량 측정에 가깝다. 단체 스포츠인 야구에서 선발 투수라는 특별한 역할에만 있는 독특한 기록인 것이다.
선발투수에게는 기록인 동시에 일종의 의무와 책임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퀄리티 스타트는 가장 계량화된 스포츠인 야구와 가장 원시적인 격투 스포츠간에 유일하게 연결고리로 성립할 수 있게 되는데, 링 위에 홀로 올라 상대와 맞서는 격투가와 마운드에서 와인드-업 하는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인 선발투수는 거의 동일한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퀄리티 파이팅(Quality Fighting; QF) 정도 되지 않을까? 야구처럼 정확하게 숫자로 기준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승패에 관계 없이 경기를 평가하는 보편적인 기준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패배한 선수에게도 찬사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퀄리티 파이팅을 증명하는 반증이다. 관중과 팬들에게 주는 감동의 수준이 퀄리티 파이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최소한 스스로를 격투 스포츠의 로맨티스트로 분류하는 에디터의 시각으로는 퀄리티 파이팅은 감동의 울림을 줄 때 성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30일 K-1 WGP 하와이 대회에 나선
하지만, 하와이 대회에서의 그의 경기는 전혀 화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부활이나 재기라는 수사를 붙일 만큼 최홍만이 높이 올랐던 기억 또한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서 구구 절절히 끼워 맞춘 논리대로 라면 승리를 기록했지만, "퀄리티 파이팅"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6개월 남짓 훈련으로 왼손 잽만 마스터하여 출전했던 서울대회 때가 오히려 기본에 충실했고 효율적 이었다. 하와이 대회 말론 전에서
'재기'며 '부활'.. 심지어는 '완벽 부활'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지경이었는데 도대체
마이티 모전은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던
한국 K-1 3인방 모두 퀄리티 파이팅은 실패
격투의 꼭 절반은 패배이며, 앞서 주장했듯 패배도 엄연한 격투의 일부이지만
이미 공포에 데미지를 입은 상태라면 체력소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대하다. 하와이 대회 때
앞서도 언급했지만 랜디 김도 이날 경기에 출전하여, 일본의 신예 사와야시키 준이치와 경기를 가졌다. 이날 출전 선수 중 객관적으로 가장 착실히 준비한 선수는 랜디 김으로 보인다. 단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패배로 이어졌다. 요코하마 대회에서 '무관의 제왕' 제롬 르 밴너를 토너먼트가 아닌 원-매치에서 판정 제압하며 일약 일본의 새로운 카드로 급부상한 사와야시키는 이날도 밴너 전과 마찬가지로 영특하기 그지 없는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초심자나 다름없는 랜디 김은 비교적 안정적인 스탠스에 가드를 바짝 올린 채 경기를 시작했다. K-1 2전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침착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내심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 순간 뭔가 부족한 것이 눈에 띄었다. 너무 정직했다고 할까? 짧은 기간 충실히 훈련하고 경기 전 구상한 대로 침착하게 경기에 나서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준비하고 생각한 것에만 의존한 게 패인이라면 패인이었다.
공이 울리면서 사와야시키는 J-net 챔피언 출신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초심자나 다름 없는 랜디 김을 피해 크게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랜디 김이 가진 위협요소라고는 가공할만한 라이트 훅 하나라고 판단했는지, 쉬지 않고 왼쪽으로 돌며 라이트 훅을 철저히 경계했다. 반면, 랜디 김은 아마도 사와야시키가 철저히 아웃 복싱으로 승부를 걸 것이라고는 미쳐 예상하지 못한 듯, 직선 방향으로 추격을 계속했다. 앞서 설명했던 퀄리티 파이팅으로 설명하면 랜디 김 역시 완수하지 못한 쪽이다. 1라운드 마칠 때 쯤에는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을 정도. 프로 스포츠에서 관중들의 야유는 업무상 배임행위나 다름없다.
랜디 김의 경우에는 체력적인 준비는 비교적 잘 되어 있었으나, 전략적 실수가 치명적이었다. 전략 전술은 항상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동성이 있어야 하는데, 랜디 김은 그것을 적절하게 구사할 경험이 부족했다. 끊임없이 왼쪽으로 돌며 견제하던 사와야시키가 불연 듯 로우킥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고, 순식간에 몰아쳐 랜디 김을 궁지로 몰아갔다.
신인 파이터 중에도 이런 상황에서도 멋진 장면을 연출하며 승리를 이어가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럴 때는 부족한 경험을 창의력으로 보완할 때 '이변'이 연출되는 것이다. 랜디 김에게는 바로 이 창의력이 없었고, 결과는 패배와 동시에 관중들의 야유도 덤으로 얻었다. 퀄리티 파이팅에는 당연히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3인방… ‘품질’을 넘어 ‘품위’와 ‘품격’으로…
공교롭게 이번 하와이 대회에 출전한 세 명의 한국 파이터들 모두 퀄리티 파이팅에 실패하여 그 어느 때보다 씁쓸함이 많이 남았다.
확실한 것은 아무리 단체의 의도적인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막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인 동시에 정도는 관중을 등에 없는 것. 아무리 의도적인 계략을 펼친다 해도 관중들의 마음속에 새긴 이미지는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퀄리티 파이팅의 핵심이 아닐까? 이 퀄리티 파이팅 이야말로 관중들과의 약속이고 책임이며 의무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스스로와의 약속과 책임이라는 것은 이미 수전을 치른 3인방 모두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K-1 한국 파이터 3인방이 이번 하와이 대회를 발판으로 퀄리티 파이팅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그 과정이 반복되어 승리의 기록은 물론 품질을 넘어 품위와 품격을 갖춘 파이터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