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HERO'S

윤동식의 비운(悲運) 그리고 '행복'에 대하여...

격투로망 2007. 6. 13. 19:06

우리는 살면서 단순히 운이 없을 때 '불운(不運;unfortunate)'이라는 표현을 쓴다. 다분히 그 불운한 사건이 1회적일때 주로 사용한다.

'불운'이 반복되거나 운명의 굴레 처럼 누군가를 따라다닐 때 혹은 그 불운의 정도가 너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비운(悲運)'이라고 표현한다. 비운이라는 단어는 우리 문화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데 결과의 현상에 집중하는 영어권에서 적절한 유의어를 찾기가 어렵다.

'비운'이라는 단어를 그 비운을 격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비운의 역경을 이겨냈거나 최소한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때 더 큰 빛을 발한다.

'비운의 유도왕'이라는 링네임을 달고 다니는 윤동식의 경우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유도 천재 윤동식?
윤동식을 말하는 수많은 표현중에 '유도 천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윤동식 본인도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아마도 비슷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유도복을 입은 윤동식의 당시 별명은 '한판'. 늘 한판으로 이겨서가 아니라 늘 한판으로 패배하면서 얻은 별명이라고 윤동식이 직접 밝힌바 있다.

훗날 세계 유도계에 길이 빛날 대기록을 작성했던 유도가의 유도 초년생 시절은 매트위에서 나뒹굴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원리를 현상을 격지 않고도 파악해내고 이미 그 대응책을 준비한 채 현상을 맞이한다. 윤동식의 경우는 철저하게 현상을 격으면서 원리를 깨달은 쪽에 가까우며, 그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근 1년이나 지속된 한판 패배들속에서 이기는 법을 깨달은 끈기와 우둔함, 그리고 성실함이 전부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윤동식 혹은 앞으로의 윤동식의 길에 대한 복선이라면 비약일까?

어쨋든 그는 유도의 원리를 깨닫고 나서야 그의 이름을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도 선수로서 그가 쌓은 커리어는 이 지면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 이미 잘 알려진 국제대회 47연승 기록은 훗날 우리나라의 이원희가 갱신하기 전까지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세계 기록이었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인데, 47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윤동식은 단 한 포인트도 빼앗기지 않았다. 사실 유도계에서 47연승만으로는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데 96년 아틀란타 올림 금메달리스트 파웰 나스툴라는 312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윤동식의 경우는 툭하고 중심을 잃으면 나오는 효과 조차도 받지 않고 쌓은 기록이라니, 믿기 어렵다. 야구로 치면 메이져리그에서 '방어율 0'이 아니라 퍼펙트 게임으로 연승을 기록한 것이다.

윤동식에게 '비운'의 꼬리표가 붙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절부터인데, '불세출의 유도가' 전기영에 이은 '천적' 조인철까지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라이벌 들과 한 시대에 태어난 것이 불운이라면 그 시작이었다. 특정대학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유도계의 파워게임도 윤동식의 비운에 기름을 부었다고 보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늘 '가장 경쟁력 있는 한국 유도선수'로 첫 손에 꼽혔지만 아이러니 하게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이라는 최고 무대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올림픽은 출전조차 못 한것 만으로도 그의 비운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윤동식의 유도인생을 이야기 하면서 전기영을 빼놓고 갈 수 없다. 잘 알다시피 한국 투기종목 최초로 세계선수권 3연패와 올림픽 금메달 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슈퍼스타'. 일본 유도의 총본산인 강도관의 종손 쯤 되는 요시다 히데히코에게 철저하게 우위를 보이며 일본 내에서도 그 입지가 높아 일본에서 선정한 유도 50걸 중에 이름이 올랐을 정도이다.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렸던 유도 스타에게도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윤동식과의 승부에서 11승 9패로 뒤진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전기영 선수가 78kg급에서 86kg급으로 체급을 조정했을 때 부터 호사가들은 윤동식과 피하기 위해서 라는 입방아가 나오기도 했었다.

아닌게 아니라, 전기영이 체급을 올린 후 윤동식에게는 적수가 없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윤동식의 비운은 지독하고도 지독했다. 전기영이 떠난 자리를 또 한명의 천적, 조인철이 채우며 윤동식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게된다. 조인철에 대한 평가는 사실 오해가 있는데, 조인철은 사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매우 뛰어난 유도선수이다. 유도계에 끊이지 않았던 특정대학 출신들의 특혜문제에 가장 많이 언급되면서 오히려 과소평가 받은 경우에 해당되는데, 조인철 또한 전기영-윤동식에 버금가는 한국 유도의 한 축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기영과 조인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어이없이 입은 무릎인대 부상... 국제대회 퍼펙트 47연승이라는 위대한 기록 이면에는 지독한 비운 또한 끊이지 않았던 것이 윤동식의 유도선수 시절이었다.


격투 천재 윤동식?
윤동식이 유도선수 시절의 '비운'에 은퇴한 후 이름이 잊혀져 갈때 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듣게된다. 2005년 4월 불연 듯 프라이드 진출 선언...... 국내 격투팬들도 놀랐지만, 일본 측의 기대는 대단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불굴의 유도왕' 요시다 히데히코를 일축했던 전기영에 우위를 지닌 유도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화제였다. 믿기 어려운 국제대회 연승 기록에. 타키모토 마코토, 후이징가, 코가 등 일본 유도의 내로라하는 금메달 트리오에게 전승을 기록한 유도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들을 경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와서 되돌아보니 윤동식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유도 종주국 일본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동식의 프라이드 진출 시에 일본 팬들 사이에서 "요시다<전기영<윤동식"의 방정식은 그대로 전해졌고, 요시다가 나름 선전하면서 서양 파이터들과 어깨를 견주고 있었으니 윤동식에게도 상대평가를 후하게 주는 분위기였다.

윤동식 스스로도 요시다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자신 쪽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일본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도선수 시절의 커리어만으로 보면 요시다가 허벅다리 후리기 등 메치기 기술을 주무기로 했던 것에 비해, 윤동식은 조르기와 굳히기에 능해 '굳히기의 제왕'으로 불렸었다. 요시다가 프라이드에서 암 바와 쵸크 등 관절기로 승리를 따내기도 했지만, 사실 유도선수 시절의 요시다의 발기술에 비해 굳히기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일본의 유도영웅 요시다와 전기영이라는 신화적인 인물과의 역학관계, 그리고 타키모토 마코토라는 조연까지... 윤동식의 프라이드 무대로의 등장은 나름대로 스토리의 앞뒤가 갖춰진 한편의 드라마의 서곡이었다.

프라이드 측에서도 MMA의 초심자인 윤동식에게 배팅한 가장 큰 이유도 당장 실전 투입 가능한 굳히기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윤동식에 대한 높은 기대는 데뷔전 무대부터 사상초유의 특급대우(?)로 이어지는데, 이게 윤동식에게는 비운이라면 또 다른 비운이었다.


사상최악의 데뷔전?
당시만해도 세계 최고, 최대, 최강의 종합격투기 무대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프라이드 무대에 윤동식은 말그대로 초특급대우를 받으며 발을 들여놓게 된다. 데뷔전 무대와 상대부터 파격적이었는데, 아마도 데뷔전을 그랑프리로 직행한 경우는 최초이지 싶다. 데뷔전 상대도 파격을 넘어 충격이었는데, 일본의 격투영웅 사쿠라바 카즈시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일본인 특유의 호들갑이 도가 지나쳐도 한 참 지나친것 같았다.

사쿠라바가 윤동식과 맞대결을 펼치기 전부터 노쇄의 기미가 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 종합격투의 아이콘이나 다름 없는 사쿠라바와 데뷔전을 하게 된 것은 가혹했다. 더군다나 타격 경험이 전무한 초심자에게 종합격투의 베테랑 파이터를 붙인것은 언덕위에서 떨어뜨려 기어올라 오는지 보겠다는 못된 심보였다.

윤동식의 배경에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나타난 비극(?) 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윤동식이 자초한 일이라니 할 말이 없다. 당시 사쿠라바가 먼저 1회전부터 외국인 파이터들과 붙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고, 다카다 통괄본부장이 사전에 다른 외국인 파이터들에게 의사를 타진해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랑프리 특성상 1회전부터 강자와 붙고 싶은 파이터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물러나지 않는 성격에다가 잃을것 또한 없는 윤동식만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윤동식은 '이왕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면, 제대로 하는 게 낫다'라고 생각했다니, 이 정도면 무모함을 넘어 순수한 수준이었다. 윤동식의 어느정도 예상되었던 처참한 데뷔전은 사실 지금와서 돌아보면 큰 약이 되었던 것 같다. 실제 경기에서의 타격의 위력을 윤동식은 몸소 깨달았고, 유도가로서 최우선과제를 바로 찾은 것이다. 수많은 '한 판' 패를 통해 역으로 승리하는 법을 깨우쳤던 유도 초년생 때 처럼 확실히 '무엇인가'를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운(?)'의 대진 속에서 배운 것들
일본 최고의 격투 스타에 이어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 전 UFC 챔피언 과 미래의 UFC 챔피언까지... 역사상 그 누구도 데뷔전 이래 이런 상대들과 연이어 대결한 파이터가 있었을까? 윤동식의 사쿠라바와의 데뷔전이래 타키모토 마코토, 무릴로 부스타만테에 이러 퀸튼 잭슨까지 그 어떤 상대도 쉽게 가는 적이 없었다. 윤동식의 대진이 발표될 때 마다 에디터 스스로부터 한숨부터 내쉬었다.

현재까지의 대진상대들의 면면을 보면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타키모토 마코토가 민망할 정도의 수준. 가뜩이나 '비운'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고 있는 윤동식이라지만, '참담하다'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표현이었다.

윤동식의 뼈아픈 연패 이야기야 격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니 생략하겠지만,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윤동식의 '패배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윤동식은 사쿠라바전에서는 종합격투 룰 자체에 대해 전혀 체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실전에서의 타격에도 본능적으로 공포를 떨쳐내지 못할 정도로 적응되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윤동식은 "부끄럽다"고 경기 후 밝혔다.

'부끄럽다'... 일본의 무사도를 단 한마디로 '부끄럽지 않기 위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현대판 무사인 격투가들에게도 이런 공식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데뷔전 후 '부끄럽다'고 했던 윤동식은 두번째 경기부터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기일전 하여 나선 두번째 경기 타키모토전에서는 유도선수 시절의 우세와 아직 윤동식이 적응이 안된 타격부분에 그다지 강점이 없는 상태였기에 큰 기대를 모았었다. 결과는 타키모토의 가공할 만한(?) 로프잡고 버티기 기술과 홈 그라운드의 이점으로 석패.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 스스로도 어느정도 적응은 되었지만, 여전히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경기에 대해 훗날 '재미없었다'고 평가했는데, 정확한 파악이다.

부스타만테 전 에서는 윤동식의 성장이 가시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웰터급 전향 결정 뒤 그랑프리 참전을 준비해온 윤동식은 다카다 도장에서 본격적인 종합 격투 훈련을 받아왔다. 당시의 윤동식의 훈련을 직접 본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도 경이적인 성장 속도에 놀랐었고, 프라이드의 홍보 담당자는 '괴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첫 승에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판정패. 하지만 내용은 확실히 세계 최고 레벨의 유술가와 대등한 기량을 보여줬다. 경기 후 윤동식은 '부족함'을 언급했다.

부스타만테와의 대전을 통해 경험의 깊이를 체험했던 것 같다. 얇팍한 전략과 전술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노련함에 상황별로 자유자재로 가변적으로 대응하는 고수를 직접 대면하면서 윤동식은 '종이 한장 차이'가 고수를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부스타만테에 비교했을때 냉정하게 자신에게 내린 평가가 바로 부족함 이었을 것이다.

두드러진 성장을 증명해 보였던 퀸튼 잭슨 전 에서는 스스로에게 다소 후한 평가를 한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은 이미 경기 내용으로 모두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기에 첨언하지 않겠지만, 윤동식은 "꼭 이기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며 처음으로 '성숙함'을 나타낸 부분이 경기 내용만큼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윤동식의 성장 속도는 실제로 경이적이었다.

링위에서의 성장은 사실 대전해 본 상대가 가장 잘 알 수 있다. 퀸튼 잭슨이 경기 후 대기실이 떠나갈 정도로 'Yoon!!'을 부르짖을며 찾아와서는 '몇 개월만 더 연습하면 챔피언 감'이라며 극찬한 일화는 패배 속에서 얻은 소중한 성과라면 성과였다. 퀸튼이 몇달 후 UFC 챔피언에 오르면서 퀸튼의 평가와 윤동식의 파이팅이 공수표가 아님이 증명되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프라이드 FC가 혼란한 상황속에서 K-1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도전한 윤동식에게 멜빈 마누프가 대진 상대로 정해지자 이제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동급 최고 수준의 탄력넘치는 가공할만한 타격을 자랑하는 마누프전은 비운의 연장선이었다.

윤동식은 이날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얻었다. 표면적으로는 오른쪽 눈을 내주고 팔을 취하며 감격스런 첫 승을 거두었지만, 윤동식이 진짜 얻어낸 것은 "행복함"이었다. 경기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도전'하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중'이라고 밝혀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 행복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윤동식 자신이 가장 잘 알터. '짧은 기간이겠지만 그럴 수록 소중하게 여겨 후회없이 해보겠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경지에 오른 수준이다. 이제 단 1승을 거둔 초보 격투가를 갓 벗어났지만, 인생의 깊이가 남다르기에 윤동식의 반응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의 비운에 대하여, 행복함에 대하여...

첫 승을 기록한 후...

윤동식을 이야기할 때 늘 '비운'을 이야기 했는데, 정작 자신은 현재 '행복하다'고 답한다. 그 누구보다도 비운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던 이는 윤동식 자신이었을 것 이다. 그런 자신이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정의 했으니 이미 비운은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윤동식의 이 행복함을 오래 지속하려면 몇가지 부족함을 더 채워야한다. 타격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증명했으나, 적응만으로는 부족하다. 타격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서 반드시 공격 무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원론중에 원론. 그라운드에서 수준급인 것은 사실이나 그라운드에서의 제압력만 가지고는 절대 승리를 따낼 수 없다.

마누프전에서의 피니시 롤링 암바는 더 없이 멋진 장면이었지만, 이미 여러차례 지적되온 그립 문제는 이제 반복되서는 어렵다. 가뜩이나 그래플러들에게 더 가혹한 현재의 룰 에서 그립의 실패는 곧 역습을 의미하기 때문. 그라운드에 원채 약한 마누푸였기 망정이지 서브미션 마스터와의 대전상황이라면 결과는 장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윤동식은 매번 그랬듯 다음에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종합격투에서도 이번 1승을 시작으로 연승기록을 세워가면 어떨까? 내친김에 사쿠라바와의 리벤지 매치를 통해 챔피언 벨트까지 가져오면 더 바랄께 없겠다. 윤동식의 행복함이 이번에는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다시는 '비운'이라는 말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