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 프라이드FC 'Forever'

압도하거나 혹은 숙제를 남기거나....

격투로망 2006. 10. 22. 22:32

     - 대회명: 프라이드 32 - "Real Deal"
     - 일시/ 장소: 2006년 10월 22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가스
     - 경기: 원 매치 총 8경기(5분 3R/ 미국 특별룰-그라운드에서 머리부분 킥 공격 금지)

프라이드 역사상 최초로 일본무대가 아닌 해외무대에서 대회가 열렸다. 22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프라이드32-Real Deal'은 TV 중계권 사태 이후 모든 선수들이 동참해 펼쳐진 '프라이드 포에버' 캠페인으로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 분위기 속에 세계진출의 첫 포문을 열었다.

프라이드가 배출한 불세출의 격투가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레드 데빌/ 러시아)도 미국의 자존심 마크 콜먼(미국/ 해머 하우스)과 또 한번 의 일전을 치루었다. 효도르의 10개월만의 복귀전이라는 점과 미국 무대에 첫선을 보이는 경기라 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경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효도르를 가장 궁지로 몰아넣었던 원년 챔프와의 격돌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뒤돌아 보면 '60억분의 1' 효도르를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순간이 세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번은 후지타 카즈유키 전에서의 강력한 럭키 펀치 때였고, 케빈 랜들맨의 2층에서 떨어트리는 듯한 저먼 스플렉스 때도 위기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크 콜먼에게 백 포지션을 내주고 헤어나오지 못해 경기내내 고전했던 경기가 효도르의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입장곡까지 '얼음황제'라는 별명다운 차가우면서고 몽환적인 곡으로 바꾸고 심기일전한 효도르는 미국 라스베가스에 몰린 2만여명의 관중들 앞에 '세계최강의 사나이'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마크 콜먼도 어쩌면 생애 마지막 도전이 될 지 모르는 세계 최강을 향한 도전을 위해 진지하게 도전을 리벤지를 준비한 듯 한결 날씬해진 몸매로 링위에 먼저 올라와 있었다.

마크 콜먼은 파워를 기반으로 레슬링 태클과 파운딩으로 경기를 끝내는 스타일이다. 단조로운 스타일은 힘이 통하지 않는 상대, 즉 발란스가 좋은 효도르 같은 타입을 제압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형적인 태클 앤 파운드 형의 선수가 공격의 시작인 태클부터 먹히지 않는다면 그 다음 공격을 이어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선수들이 링위에 오를때는 말 그대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 가상의 적을 두고 끊임없이 변수를 대입해가며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나온다. 물론 자신이 이미지 트레이닝한 시나리오대로 맞아 떨어진다면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실전에서는 너무나 많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보통의 파이터라면 평소에 준비해 놓은 여러장의 카드 중에 이런 환경 변화에 맞게 그때 그때 전략 전술을 바꿔가며 대입하기 마련이다.

UFC와 프라이드FC 정상에 올랐던 백전노장 마크 콜먼이 이를 몰랐을까? 이미 효도르와  한 차례 맞붙어본 콜먼은 효도르에게는 이런 즉흥적인 술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너무나 잘았을 것이다. 콜먼은 효도르를 앞에두고 잔머리를 써 약점을 잡아내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듯 했다.

미국 레슬링 대표감이었던 콜먼의 태클은 강력하기로 악명 높았다. 전성기때는 태클만으로 상대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고까지 평가받기도 했는데, 오늘도 역시 콜먼은 이 태클에  집중하기로 한 것 같았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펀치 러쉬로 거리를 좁혀오는 효도르의 다리를 노린 원 레그 테이크 다운을 위한 태클에 소위 '올 인' 했다.

발란스가 좋은 효도르가 효과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콜먼의 태클을 막아내서 테이크 다운 시도 자체를 봉쇄했지만, 콜먼의 집요한 태클은 계속되었다. 효도르를 상대로 유일하게 우위를 점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기 때문. 그라운드에서 머리 부분에 킥 공격을 금지한 특별룰도 마음 놓고 하단 태클을 들어가게 해준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부상으로 1년 농사를 망치게 했던 효도르의 오른손은 우선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다. 콜먼의 몸이 들썩 할 정도로 강력한 오른 손 훅이 두차례나 적중 되었지만 이상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1라운드를 1분여 남겨놓았을 쯤 효도르의 오른 손 훅이 콜먼의 왼쪽 눈에 부상을 입히며 닥터 체크를 받게 하기도 했고, 1라운드 내내 콜먼의 태클은 집요하다 못해 지리하게 이어졌다.

2라운드에 들어서도 콜먼의 원 레그 테이크다운을 위한 태클은 이어졌다. 2라운드 초반 기어이 효도르를 상대로 테이크 다운을 빼앗아 냈지만, 콜먼이 미쳐 다음수를 생각해내기도 전에 경기는 끝이났다.

1차전 당시 효도르에게 왼 팔을 내주며 암바로 패배했던 것을 잊었던 것일까? 똑같은 패턴으로 이번엔 오른팔이 리버스 암바에 걸리며 탭 아웃 해 버렸다. 효도르의 발란스를 무너뜨리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효도르가 출중한 타격가 이기 전에 타고난 서브미션 전문가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것 같았다. 2라운드 3:40초 경, 미국의 마지막 남은 프라이드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링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경기가 끝난 후 콜먼은 자신의 홈 그라운드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 것이 억울했던지 울먹이는 표정으로 세컨들과 하나하나 포옹을 하길래 순간, 콜먼이 은퇴라도 결정한 줄 알았다. 경기 전부터 내내 함께 했던 두 딸이 뛰어나와 패배한 아빠 품에 안겨서 울먹일 때는 분위기는 완전 은퇴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내 마이크를 잡은 콜먼은 역시 집요하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반복해서 울부짖었다.

어쩌면, 프라이드FC나 효도르 입장에서는 콜먼 보다는 심심찮게 이야기가 흘러 나왔던 룰론 가드너 쪽이 훨씬 더 좋은 카드 였을 수도 있다. 가드너가 러시아의 국민적 레슬링 영웅 카렐린을 넘어서 금메달을 따낸 배경과 프라이드 데뷔전에서 보여줬던 가공할 만한 격투 센스를 고려하면 효도르 입장에서 더 빛이 날 수 있는 카드였을 수도 있다.

최근의 일련의 위기들을 미국 진출이라는 카드로 새로운 돌파구를 삼으려 했던 프라이드 입장에서도 흥행을 위한 스토리 구성에 훨씬 더 확실한 카드 였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파이트 머니 문제로 프라이드와 감정이 좋지 않은 가드너지만 혹시 모를 대체 출전을 대비해 가드너가 메디컬 체크까지 받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쉬움이 더욱 짙게 남았다.

어쨋든 효도르는 돌아왔고 놀라운 발란스와 펀치 위력은 그대로였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뭇내 아쉬운 부분이다. 이제는 그라운드에서 파운딩까지 퍼붓는 크로캅이 무차별GP 타이를을 따내며 다시한번 도전권을 얻어낸 이상 챔피언으로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제는 관중들 중 누구도 효도르의 승리에만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TV 중계권 사태 이후 프라이드 포에버 캠페인의 클라이막스나 다름없었던 미국 시장 진출의 초석은 다진 것 같다. 일단 주사위는 던저진 상태이고, 그 첫 걸음에 프라이드FC의 최고의 상품인 효도르를 일단 선보이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진출의 성패는 단기적으로는 유료중계권 판매(Pay Per View) 매출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다음은 다음 대회를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프라이드 측 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실바 카드를 남겨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중을 압도하고 도전하는 상대를 압도할만한 무엇인가가 없었다는 점은 프라이드 측이나 효도르에게나 큰 숙제를 남겼다. 격투 스포츠는 들여다 보면 볼 수록, 이기거나 지는 것이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압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숙제를 남기는 것 이 더 적합한 설명이 아닐까? 언제나 그래왔지만 이번엔 유독 효도르와 프라이드FC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