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 프라이드FC 'Forever'

[프라이드 2006 GP] 서브미션(Submission)의 부활

격투로망 2006. 5. 7. 12:1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라이드 무차별 그랑프리(PRIDE FC Grand prix 2006)이 개막전 7경기가 치뤄졌다. 당초 관심을 끌었던 중경량급 선수들의 기적같은 승리는 출전선수 발표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지만, 여러모로 의미있었던 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한동안 위축되었던 '서브미션(Submission)의 부활이 아닐까? 이번 GP 1회전 총 7경기 중 절반이 넘는 4경기가 서브미션 기술로 승부가 갈렸다.

서브미션은 실전 격투에서, 특히 1:1이라면 그 어떤 격투기술보다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제압술이다. 주로 와술계 관절기술로 상대를 제압하여 탭-아웃을 받아내는 기술을 통칭하는 서브미션은 상대의 신체 일부분을 완전히 제압하여 격투 불능의 상태로 만든다. 극심한 통증을 주거나 혹은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통해 경기를 끝낼수도 있다. 더군다나 상대의 들어오는 힘이나 그라운드에서 체중 분배상의 허점을 공략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매커니즘은 이런 효율성을 배가시킨다.

MMA 초창기의 서브미션은 '필살의 비기(秘技)'나 다름 없었다. 현대 격투 스포츠의 효시인 UFC 초창기의 호이스 그레이시가 그랬고, 예상을 깨고 프라이드 FC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의 기술들이 그랬다. 특히 노게이라는 변화무쌍한 주짓수 기술로 상대를 요리하면서 '주짓수 매지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었는데, 당시의 서브미션 기술들은 말그대로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서브미션 기술들이 가장 위력 적일 때는 상대가 서브미션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일 때 인데, 상대가 서브미션 기술을 구사한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이런 서브미션 기술들의 '의외성'이라는 특징이야 말로 서브미션의 가장 큰 위력이다.

상대가 서브미션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물론 양상은 달라진다. 최근의 MMA 판도가 타격계 강세였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이런 '의외성'이 현저히 감소하면서 즉, 선수들이 서브미션 기술체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면서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타격가들이 챔피언 벨트를 독식했던것도 사실이다. 단적인 예가 노게이라와 효도르의 세차례에 걸친 맞대결인데, 효도르가 타고난 핸드스피드를 앞세운 펀치와 파운딩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기는 하지만 삼보로 다져진 서브미션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결코 노게이라의 개미지옥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후평이다.

숨겨져 있던 서브미션 기술체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에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대응전략이 속속 나타나자 더 이상 서브미션은 위력을 잃는 듯 했다. 거기다가 '화끈한 경기'로 흥행을 일궈내내야 하는 프라이드 FC 측의 욕심은 엉뚱하게 '지루한 플레이'를 퇴치하겠다며 그래플러들에게 극도로 불리한 룰을 적용하면서 서브미션의 시대는 끝나는가 싶었다. 실제로 한 동안 프라이드를 지탱했던 '타격가 대 유술가'의 대결 구도는 더이상 흥행요소로 작용하지 못했고 힘과 스피드 중심의 타격 강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서브미션의 효율성이라는 매력은 링위에 서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결코 한 순간에 버리기는 너무나 아까운 기술들이다. 극단적으로, 100번의 펀치를 날려도 잡을수 있을지 의문인 상대라도 단 한번의 서브미션 기술이 정확하게 성공시킨다면 승리를 따낼수 있다면? 그 어떤 선수라도 그런 효율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주짓수와 레슬링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현대 MMA 스포츠의 구도 상 압도적으로 서브미션 계 선수들이 많은데, 하루 아침에 모든 선수들이 타격 중심으로 변모하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브미션은 아직도 진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양상은 역시 타격의 보완... 이제는 아부다비를 재패한 서브미션 레슬링의 챔피언이라도 타격기를 구사해야만 링위에 설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GP 1회전 첫경기였던 파브리시오 베우둠과 오브레임의 경기야 말로 서브미션의 제압력을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타격에 강점이 있는 오브레임이 입식 타격에서 확실히 베우둠을 제압해 내지 못한 반면, 스탠딩에서 오브레임의 공격을 차단하며 기회를 노리던 베우둠은 거의 유일한 그라운드 기회를 놓치지 않고 2라운드 4분 경 기무라를 성공시켜 승리를 따내었다.

조쉬 바넷도 마찬가지. 포스트 효도르로 날로 주가를 높히던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의 파상공세를 견더낸 후 서브미션 기술로 역전승을 일궈냈다. 마치 오픈 핑거 들러브를 낀채 벌이는 복싱경기 양상으로 펼쳐지던 이 둘간의 경기는 그라운드로 전환되어 바넷이 높은 경험치에서 나오는 포지션 싸움의 우세를 보인 뒤 리버스 마운트를 점한 후 두 차례나 시도했던 로우 키락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제7경기의 노게이라의 승리야 말로 서브미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 격이었다. 경기전 어마어마한 덩치의 줄루에게 타격전을 공언한 노게이라였지만, 그동안 와신상담 갈고닦은 복싱 스킬을 채 선보이기도 전에 찾아온 기회를 역시 서브미션으로 마무리 지었다. 주짓수의 퍼플 벨트라는 줄루를 상대로 테이크 다운에 이은 하프 가드, 가드 패스 한 뒤 사이드 마운트에서 파운딩과 니 킥을 곁들여 풀 마운트 포지션으로 올라, 깨끗한 암 바로 이어지는 공식같은 서브미션 공격으로 가볍게 승리를 거두었다.

관심을 모은 요시다 히데히코와 니시지마 요스케의 승부도 역시 깔끔한 서브미션으로 승패가 갈렸다. 경기시작 2분만에 암바로 시작하여 트라이앵글 쵸크로 마무리 짓는 그림같은 컴비네이션으로 서브미션 회복세를 마무리진 것. 정통 복서의 멋진 펀치 테크닉도 그라운드에서 팔이 잡힌 상태라면 빛을 낼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마크 헌트와  코사카 츠요시의 제 3경기도 빼놓을 수 없다. 20kg에 가까운 체중차에서 오는 파괴력 차이에다가 마크 헌트의 수준 높은 펀치 테크닉까지 그야말로 한방 한방이 그로기 감 펀치였다. 전술전략에 일가견이 있다는 노장 코사카가 계속해서 전진하는 전략으로 마크 헌트에 따라붙었지만 펀치의 위력차는 도저히 근성으로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노장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투혼이 빛났던 경기라 더욱 아쉬운 장면이 하나 있는데... 1라운드에서 코사카가 백 마운트를 점한 채 끈질기가 시도했던 장면이다. 마크 헌트의 팔을 노리고 시브미션 기술을 시도했으나 아갑게 무산되었다. 서브미션에 일가견이 있는 코사카였기 때문에 단 몇센치만 안으로 단단히 지렛대가 걸렸다면 대이변도 기대할 수 있었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 기회를 놓친 코사카는 말그대로 불꽃같은 노장 투혼을 불사르며 계속해서 마크 헌트의 사정거리 안으로 전진해 들어갔지만 승패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경기 후 마크헌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진심으로 코사카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말로 감동의 드라마는 마무리 되었다.

물론 단 대회의 결과만을 보고 서브미션의 위력을 되찾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서브미션도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전에 타격계 선수들이 유술계 선수들에 연이은 낭패 후에 진화 했던 것 처럼 이번에는 서브미션 차례라는 생각을 하게했던 대회였다. 확실히 타격계 선수들의 대응이 좋아져 서브미션 기술 시도의 기회 자체가 많지 않고, 심판진도 한 순간이라도 지루한 경기 운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 조차 없다. 서브미션 기술 자체의 제압력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결론은 순간적인 기회 포착 판단능력에 이은 빠르고 정교한 기술 구사라는 답으로 귀결될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타격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이 기본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MMA... 왠지 무협지에 나오는 '절대강자는 없다'는 무림중원의 이치가 그대로 적용되는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