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5년 7월 스포츠서울> 남아존> 반또라이의 격투로망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

전 세계 프라이드 팬들의 이목은 미들급 그랑프리 준결승 진출자 4명에게 쏠려있는 이 시점에 유독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는 파이터가 있었다. 요시다 히데히코.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로 '일본의 국민적인 영웅'였으며 일본 격투의 자존심인 한 중년의 사나이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요시다 히데히코(Yoshida Hidehiko, 35세, 요시다도장)는 누가뭐래도 일본의 국민적인 '영웅'이다. 프라이드에 진출했든 안했든, 실바를 이기든 지든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유도는 일본인들에게는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라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알고있는 사실이다. 요시다 히데히코는 90년대 세계 유도계에 일본유도를 증명한 산 증인이다.

세계 유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는 역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 일본인들은 전일본 선수권 대회까지 포함해 이 세 대회를 '3대 대회'를 최고 권위의 대회로 인정한다. 요시다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7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후 99년 버밍엄 세계 유도선수권대회 -90kg급을 재패했다. 전일본 선수권은 재패하지 못했으나 우승보다 더욱 값진 업적을 이루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체급, 무제한 대회인 전일본에서 사실 78kg급 선수가 큰 활약을 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94년 이 대회에 출전한 요시다는 준결승에서 193cm에 100kg이 넘는 선수와 맞붙어 거구의 상대를 가볍게 메치며 우세승을 거둔다. 당시 상대가 바로 현재 '허슬'의 오가야 나오야. 당시 대회 6연패를 기록하던 최고의 유도왕을 제압하며 '유도왕'이라는 타이틀을 이어받는다.

사실 요시다는 23살 약관의 나이에 올림픽을 재패하면서 사상 첫 올림픽 3연패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100년에 하나 나올만한 기재'......  실제로 요시다는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으나 '불세출의 유도가'와 동시대에 태어난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나라의 전기영 선수. 만일 전기영이 없었다면 실제로 요시다가 노무라 다다히로보다 먼저 사상 첫 올림픽 3연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도 선수시절 전기영과의 숙명적인 만남은 이미 잘알려져 있는 대목. 93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전기영에게 패배한 요시다는 -86kg급으로 체중을 올리면서 두 체급 석권을 새로운 목표로 하며 전기영과의 악연은 끝이 나는 듯 했다. 같은 생각을 했을까? 전기영도 같은 급으로 체급을 올리며 요시다와 다시 만나게 된다. 결과는 전기영의 완승. 전기영은 또 다시 유도 종주국 에이스를 짓밟으며 결국 세계선수권 3연패의 업적을 달성한다. 요시다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것은 그 뒤인 99년, 세계연맹에서 -90kg으로 체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전기영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대회에 나오지 못하면서 요시다에게 마지막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일본인들은 전기영의 신화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요시다가 포기하지 않고 끝내 세계선수권 재패를 이루어낸 '불굴의 도전정신'만 언급할 뿐. 굳이 그들이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구구절절 읊었던 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영광 뒤에는 오랜시간 '2인자'로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 뒤 MMA 무대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때 유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매우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요시다가 유도 선수로써는 매우 훌륭한 성적을 이루어 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형적인 메치기 전문 선수였기 때문. 현대 스포츠 유도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와술계 기술 부문에서도 요시다는 최악에 가깝다는 평가를 들었었을 정도였다. 잘 알다시피 유도 선수들이 종합격투에서 곧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바로 와술계 관절기였기 때문에 요시다의 도전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좋든 싫든 요시다는 적응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기대의 크기만큼 우려의 크기도 컸었지만 어엿한 종합파이터로 한 자리를 차지해냈다. 단지 미들급 최강 반달레이 실바를 '아직' 넘지 못했을 뿐... 미들급 최강 실바와의 두번의 맞대결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정작 요시다는 어떻게 생각할까? 링 위가 아니라면 유쾌한 사람인 요시다는 실바의 지명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실바가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설령 들렸다 하더라도 '들리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사전에 전혀 들은바가 없어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다카다 본부장이 '지명했으니까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다."

실바에게 두번째 패배하여 그랑프리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서는 "기합에서 졌다"고 평가했다. 비교적 일찍 대전이 결정되어 오랜기간 준비해 후회는 없다고. 판정까지 가기는 했지만 실바에게 다가갈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실바가 그라운드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고는 하지만 요시다의 증언으로는 "사이드 마운트를 빼앗아 내도 공격을 펼치기가 매우 어렵다"고...

실바의 유술 검은 띠의 일등 공신은 사실 요시다이다. 10여년 간 주짓수를 꾸준히 수련해 온 실바가 일본의 '유도왕'을 그라운드에서 제압한 것을 인정받은 것이 실바의 승단심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 실바의 주짓수 검은띠를 두고 일종의 명예 단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술계와 유도계의 미묘한 감정을 감안하면 눈길이 모아지는 부분이다.

유도 쪽에서 보면 요시다의 종합격투 참가도 역시 미묘한 상징성이 있다. 고대의 살인기술이였던 유술의 위험요소를 걷어내고 유도를 창시한 가노 지고로가 만든 강도관 유도가 우리가 아는 스포츠 유도의 본산이다. 요시다는 유도의 총본산 강도관에서 배출한 유도가이다. 집안으로 치면 종가집의 종손쯤 될까? 실제로 요시다가 프로 데뷔 시 유도계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시다의 프로데뷔는 종합 격투계를 주름 잡고 있는 유술계 선수들과 충돌을 피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요시다의 애제자 나카무라 카즈히로가 브라질로 유술 수련을 받고 온데 이어 요시다도 브라질에 가고싶다고 밝힌 바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고대 유술로의 회귀'라고 하면 비약일까? 유도계 입장에서 보면 애지중지 키워온 집안의 종손을 항렬도 낮은 먼 친척뻘 되는 집에 맞기는 기분이 아닐까?

요시다는 실바가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가 챔피언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할거면 강한 자와 하고 싶다는 것. 실바에게 두번째 패배하는 것을 보며 전기영에게 밀려 무려 7년이란 세월을 버텨낸 일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사실 요시다는 99년 세계선수권 재패 후에는 그냥 '유도왕'이 아니라 '불사조 유도왕'으로 불렸다.

요시다는 비록 이번 그랑프리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8월 28일에 경기는 가질 것으로 보인다. 연말 '남제 3'에 실바와의 3전 혹은 힉슨 그레이시와의 대전에 대한 벌써부터  루머가 나돌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요시다는 "연말에는 홍백가합전(일본의 연말에 하는 최고 인기 TV프로그램)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사쿠라바를 능가하는 일본 대표 격투가로 성장한 그를 프라이드와 팬들이 그런 여유를 허락할지 의문이다.

이 시점에 요시다가 생각난 것은 고백하건데 순전히 우리나라의 유도가들 때문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민수와 굳히기와 조르기의 귀재였던 윤동식... 그들에게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요시다의 이야기를 쓰면서 마음 한구석에 그들이 있었을 뿐... 물론 이제는 '신화'가 되버인 전기영과 개인적으로 가장 탐이 나는 장성호까지...

'불사조 유도왕' 요시다 히데히코의 불굴의 도전정신 하나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미 도전을 시작한 두명의 대한민국 유도가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도전을 일축해 버린 다른 두명의 유도게 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국가대표 은퇴를 앞둔 장성호 선수는 이미 이종격투기 쪽에서 수차례 오퍼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격투 스포츠계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장성호 선수는 "유도, '1종'만 하겠다"고 일축한 바 있다.)

2005/07/22 18: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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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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