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 대회에서 어느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신예 선수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예전의 쇼군이 그랬었고, 히어로스의 토코로가 그랬었다. 지난 K-1 월드 그랑프리 도쿄 결승전에 첫 선을 보였던 바다 하리는 참 오랫만에 그런 즐거운을 선사해 주었던 파이터 였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06년 모든 단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은 활약이 기대되는 네덜란드의 '악동' 바다 하리를 집중 조명해 보자.

 

"슐츠, 호스트, 밴너, 레이 세포, 페이토자, 최홍만...

모두들 지금까지 수고했어. 미안하지만 내가 내년 WORLD GP의 챔피언이  될 거니까!!"


-  K-1 WORLD GP 2005 도쿄 결승전이 끝난 후 기념 모임 자리에서...

 

 

K-1은 선수층이 두껍기로 유명하다. 전 세계 모든 킥복싱 선수들과 무에타이 선수들이라면 일단 그 종착역은 K-1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라데도 무시 무시한 선수층을 자랑한다. 한마디로 전 세계 모든 온글러브 입식타격계 파이터들은 K-1 월드 그랑프리 타이틀을 향해 매년 모여드는 형국이다. 이런 K-1 링에 오르려면 사실 앞서 언급했던 종목들에서 최정상급 수준을 보인다 해도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니란 것이 된다. 즉, K-1에 슈퍼루키가 나오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K-1에 그야말로 엄청난 '물건'이 나왔다. 실로 오랫만에 아직은 다듬어 지지 않아보이지만 잠재력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슈퍼 루키! 독특한 이력과 거침없는 언행 그리고 충격적인 데뷔전 까지... 깜짝 스타가 탄생하기 위한 조건들은 모두 갖춘 파이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다 하리, 입식격투 상임이사국 네덜란드에서도 유명한 싸움꾼이었다라고만 알려졌었지만 바다 하리의 아마추어 무에타이 전적은 60전에 다다른다. 승율이 95%에 이르렀다면, 뭐가 있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챔피언 레미 본야스키가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추천했었던 것만 봐도 아마추어 시절을 가늠하고도 남는데, 아직 21살의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내공을 쌓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깡말라 보이지만 네덜란드 출신답게 체격 조건도 우수하다. 머리가 작은 서양인 특유의 체형이라 덩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2m에 가까운 키에 94kg나 나간다. 100kg 내외로 증량만 한다면 K-1 최고수준의 하드웨어를 갖추는 셈이다.

14살에 '규칙에 얽매이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학교를 중퇴하고 길거리 싸움을 일삼던 바다 하리는 "아무리 사람을 때려도 주의를 안 받는다"는 이유로 킥복싱을 선택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바 있다. 현재도 프로 파이터 외에 나이트클럽 사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앳되보이는 외모이지만 철저하게 '악동'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격투 스타일도 변칙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실 바다 하리의 외모와 이력만 보고 변칙적인 스타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바다 하리는 정통 스타일(Othodox)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로 스테판 레코 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안정적인 자세에다가 로우킥으로 시작하여 대각선 펀치를 섞어내는 정석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다. '악동'루키 답지 않게 차분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긴 리치와 예상을 뛰어넘는 킥의 궤도도 훌륭해 보였다. 특히 단 한장면이었고, 적중되지도 않키는 했지만 무서운 각도에서 올라왔던 니 킥은 그의 별명대로 '코브라'의 맹렬한 공격처럼 보였다. 긴 리치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스트레이트를 비롯한 펀치 공격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도저히 K-1 데뷔전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K-1에서 오소독스 스타일만으로 모두를 제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 바로 '창의력' 매순간 바뀌는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진 기술을 조합해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강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바다 하리는 레코 전에서 이런 창의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예상외로 정석적인 플레이에 놀라고 있을때 터져나온 엑스 킥이 그랬고, 코너로 몰리는가 싶더니 별안간 생각하기 어려운 각도에서 올라온 니 킥이 그랬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K-1 역사상 한 손에 꼽을 만큼 멋진 KO 장면을 만들어 냈던 벼락같은 뒤후려차기까지... 럭키 킥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킥이 정확하게 적중된 것은 분명 어느정도의 행운이 뒤따를 수도 있지만, 스테판 레코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백 스핀 하이킥을 시도해낸 것은 창의력이라고 보는 게 백번 맞다. 분명 그 킥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스테판 레코의 상승세를 충분히 반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몇 해전 네덜란드 무대에서 레코에게 똑같이 '럭키' 백 스핀 킥으로 역전 KO패 당했던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플레이가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상상해보면 바다 하리의 잠재력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에도 스테판 레코가 방심했던지 바다 하리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습적인 백 스핀 킥으로 역전승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의도적이었던지 아니었던지 그 상황에서 백스핀킥 이라는 카드를 꺼낸 바다 하리의 이런 창의력이 바로 올해 K-1의 유망주로, 주목해야 할 파이터로 첫 손에 꼽은 가장 큰 이유이다.

프로스포츠인 K-1에서 경기 외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바다 하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악동 이미지로 포지셔닝 하여 확실한 눈도장을 받아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언사도 크게 한 몫했는데,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도쿄 대회 후 열린 행사에서 현 K-1 최강자의 이름을 줄줄이 읊은 뒤, "수고했다"며 "2006 그랑프리에서는 내가 우승할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일순간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옆에 있던 새미 슐트가 "젋어서 좋구만"이라고 얼버무렸을 정도. 팬들을 즐겁게 할 줄 아는 선수다.

자신의 데뷔무대에서 그랑프리를 재패한 세미 슐트의 경기에 대해 묻자, 바다 하리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슐츠의 시합을 볼때 "졸리지 않았냐'며 되물었던 것. 이제 막 K-1에 발을 들여놓은 루키로서 챔피언을 한번쯤 동경할 법 도 한데 "장기 집권이 가능할만한 존재는 아니"라며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가 과제"라며 오히려 걱정(?)을 해주었다. 이에 덧붙여 "프로 파이터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팬들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해 보이기도 해서 취재진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그랑프리 본선 진출자중에는 그런 선수가 없었다"고 덧붙여 건방을 떨기는 했지만...

네덜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격투가 호스트나 피터 아츠까지도 동경의 눈으로 본 적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바다 하리, "앞으로 링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파이터를 존경할 수는 없다"며 관중들을 즐겁게 한 앤디 훅만을 인정한다는 그가 과연 격투 강국 네덜란드의 파이터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 아니면 K-1의 아이콘이었던 앤디 훅 처럼 존경받는 격투가로 성장하게 될지는 2006년 본격적으로 K-1 그랑프리 도전에 나서는 바다 하리의 모습을 보고 난 뒤 격투팬들이 판단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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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격투칼럼니스트 이정민/ 격투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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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3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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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출한 위치! 많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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