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 리벤지 '06 대회가 30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렸다. 우리나라의 최홍만 선수도 출전하여 계속되는 진화를 또 다시 증명하며 승전보를 알려와 더욱 의미가 깊은 대회로 자평하고 싶다. 사실 이번 리벤지 대회는 K-1이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월드 그랑프리(WGP) 체제로 자리잡은 이후 7년여만에 부활한 시리즈이다. K-1 초창기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 구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리벤지 대회를 앤디 훅 7주기 추모 행사의 일환으로 다시 열린 대회이다.
리벤지 하면 자연스럽게 앤디 훅이 떠오른다. 앤디 훅이 K-1의 상징처럼 격투팬들에게 깊게 각인된 것은 그가 연전연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석권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앤디 훅은 단 한번 WGP에서 우승했을 뿐, 정상급 선수치고는 패배도 매우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에 가까운 추앙을 받는 것은 순전히 그의 그 유명한 리벤지 때문일 것이다.
격투스포츠에서는 리벤지 매치에서 한번 졌던 승부를 뒤엎고 승리를 거두기는 평상의 2배 이상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미 한차례씩 공개한 기술적인 상대성에다가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도 견뎌내야 한다. 리벤지 매치는 자신을 한차례 제압했던 상대와 한번 패배했던 자기 자신과 2:1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 리벤지는 그만큼 어렵고 30일에 열린 리벤치 매치에서도 4경기 중 레미 본야스키 단 한 명만이 리벤지에 성공한 것이 그 반증이다.
이미 2006 WGP의 본선 티켓을 확보해 놓은 최홍만도 아케보노의 리벤지를 처참히 무산시키며 승리를 거두었다. WGP를 앞두고 기분좋은 승리를 거둔 것도 기쁜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최홍만의 주목할 만한 진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더욱 기쁜 일이었다.
어느정도 기본을 갖췄던 왼손 잽에데가 그토록 기다리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터져 나왔다. 라이트 만으로도 놀라운데 단 한차례였지만 레프트 스트레이트까지 선보여 우리를 놀라게 했고, 거인형 파이터에게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연타 능력도 보여 줬다. 로우킥에 미들킥 비스무리한 킥에다가 가공할만한 플라잉 니킥까지... 최홍만은 확실히 진보했고 이는 엄청난 훈련량을 가늠하게 했다. 비로소 파이터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홍만에게는 엄청난 진보이지만 격투가로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나 다름없다. 다양한 공격기술은 사실 기본중에 기본이나 다름없다. 이 날 챌린지매치에 선보인 아마다 히로미의 펀치 기술과 연타 능력, 폴 슬로윈스키의 킥 기술은 최홍만에게 단기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외에 다른 출전자들만 유심히 보면 최홍만이 밟아야 할 다음 단계에 대한 해답이 바로 나온다.
먼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파이터는 비욘 브레기... 새미 쉴트, 최홍만과 함께 자이언트형 파이터로 분류되었던 비욘 브레기는 앤디 훅의 제자답게 '기술형' 선수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챌린지 매치 두번째 경기에서 일본의 '2인자' 나카사코 츠요시를 맞은 비욘 브레기는 2m 2cm의 거구라고는 믿기지 않는 스피드의 '움직임'으로 자이언트 파이터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가공할 위력의 고공 니킥은 그를 올해 WGP의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첫 손에 꼽게 만들었다. 최홍만에게 가장 하고 싶은 조언을 브레기가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링 위에서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민첩하면서도 효율적인 스텝을 갖춘 다음에는 '거리 조절'일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깜짝 WGP 복귀를 알린 어네스트 호스트가 대표적인 '거리를 제압하는' 스타일인데, 거리를 제압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는 것은 속설이 아니라는 것을 호스트가 산증인이다. 이 날 경기에서도 호스트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피터 아츠도 세월에 불어난 몸을 이끌고 참 열심히도 스텝을 밟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츠는 리벤지 상대였던 게리 굿리지의 무시무시한 라운드 펀치의 사정거리를 살짝 넘나들며 묵직한 로우킥과 부활한 하이킥까지 다양한 루트로 파고 들었다. 게리 굿리지가 라이트 훅 한 방을 노리며 거리를 재었지만 '거리'는 이미 아츠의 차지였고 승리도 함께 가져갔다.
다양한 공격기술과 효과적인 발놀림에 의한 거리조절 다음은 '완급 조절'이다.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면서 체력안배는 물론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효과적인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완급 조절이다. 실제로 어떤 경기가 '수준이 높다'고 말할 때는 화려한 기술보다도 이 완급 조절을 의미할 때가 더 많다.
경기의 템포를 잘 이용하는 선수가 바로 메인이벤트로 나온 무사시인데, 평소에도 상대의 상승세를 끊어놓는 기가막힌 재주를 보이는 무사시는 높낮이 관리와 함께 템포 조절을 잘하는 파이터이다. 무사시가 재미는 없지만 체격이 작은 동양인 파이터로서 가장 효과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무사시가 이번엔 역으로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완급 조절에 당했다.
페이토자가 다양한 공격기술을 선보이며 1, 2R를 마칠때 까지만 해도 연장을 기대했는데, 페이토자는 3R에서 허를 찌르는 시프트-업 전략으로 빠른 템포를 선택했다. 결과는 적중. 일본에서 무사시는 판정에서 매우 강한데(?), 빠른 템포로 시종일관 몰아친 페이토자의 공격에 경기 종료 전 빼도박도 못하는 다운을 빼앗기며 끝내 리벤지에 실패했다. 이 날은 무사시의 근성과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였고 완급조절은 페이토자가 한 수 위였다.
최홍만이 가야할 길의 종착에는 바로 이런 '전략'과 '수읽기'가 있을 것이다. 자신과 상대를 객곽적으로 분석하여 그 상대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자신의 공격기술들을 조합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명파이터냐 아니냐를 가르는 요소가 될 것이다. 여기다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기회포착 능력과 순간적인 기치를 보이는 창의력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이 날 경기에서도 모든 선수들이 각기 구상해 온 다양한 전략 전술을 펼쳐보였는데, 개인적으로 게리 굿리지의 '팔을 내주고 머리를 취하는' 전략이 가장 좋은 예로 꼽고 싶다.
비록 승리를 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피터 아츠에게 모든 부분이 뒤진다는 것을 안 굿리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효과적인 제압기술로 오른손 라운드 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굿리지는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이런 전략적인 선택에 따라 전술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최홍만에게 충분한 시사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위의 다른 진화요소들을 갖추기 전까지는 최홍만도 당분간은 굿리지와 같은 극단적인 전략을 취해야 할 때가 더 많을 것을 예상해보면 굿리지의 선택을 눈여겨 봐야 한다.
다양한 공격기술에 민첩한 스텝, 영민한 거리조절과 경기의 완급 조절 능력까지 갖춘데다가 '수읽기'에도 능하고 그때그때 효율적인 전략전술까지 펼쳐내 보인다면, 완벽한 파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최강의 파이터로 완전무결의 경기운영을 보이며 모든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본다면 대답은 'No'.
격투가라면... 단순히 프로 격투기 선수가 아니라 격투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앞서 구구절절 언급한 모든 요소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위의 다른 요소들을 모두 상응하고도 남을 만한 것으로 '정신력'을 꼽고 싶다. 앤디 훅 추모 대회에서 이제 막 격투가로서 첫발을 내딘 최홍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구구절절히 늘어놓았지만 실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것이었다. 앤디 훅이 왜 K-1의 아이콘으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격투팬들을 사로잡고 지금까지도 가슴속 한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지 이유를 대라면, 난 첫 손가락에 '앤디 훅 정신(Andy Hug Spirit)'을 꼽을 것이다.
불굴의 정신력... 패배는 할 지언정 실패는 하지않았고, 신체적인 약점을 정신력으로 메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켰던 그 정신력만은 최홍만에게 꼭 되개겨 보라고 하고 싶다. 시작이 늦은만큼 명확한 목표설정으로 격투가로 가는 가장 올바른 길을 최홍만도 뒤이어 가기를 감히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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